“족구 한 판 하실래요?”
대학생들에게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공무원 시험 준비해야 돼요.” “토익공부 해야 돼요.” “학점 관리하기도 바쁜데 족구는 무슨….” “학자금 대출 갚으려면 알바 해야 돼요.” 이게 대세 아닐까?
그러나 영화 ‘족구왕’(감독 우문기)의 주인공 홍만섭(안재홍)은 “대한민국 청춘, 다 족구하라 그래!”라고 패기 있게 말한다.
군 생활 2년 동안 족구만 하던 ‘족구왕’ 홍만섭. 제대 후 이제 고생길 끝이다 싶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족구를 하고, 연애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학교로 돌아왔지만 현실은 팍팍하다. 학점 2.1에 토익점수와 여자친구도 없는 만섭. 기숙사의 나이 많은 방 선배는 “꿈 깨, 공무원 준비나 해”라고 말한다.
그래도 만섭은 “공무원 시험은 관심 없어요. 저는 연애하고 싶습니다”라고 꿈을 당당히 밝힌다. 낭만이라고는 사라진, 정글 같은 캠퍼스에서 만섭은 사랑과 족구에 목숨을 건다. 학교 최고의 퀸카 안나(황승언)에게도 무대포 정신으로 돌진한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학교 족구장 건립을 위해 서명운동 까지 벌인다. 그러나 “족구하는 소리하고 있네”라고 비아냥을 듣는다.
결국 만섭의 종횡무진 활약에 교내 족구대회 까지 열린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영화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현란한 족구기술, 화려한 몸동작, 군데군데 숨어있는 웃음 유발 요소들은 관객들을 물개처럼 박수치게 한다. 족구왕이 지닌 비장의 필살기는 이 시대 청춘들의 답답한 현실을 날려주는 것 같다.
‘족구왕’에는 유명 배우 한 명 나오지 않는다. 만섭 역의 배우 안재홍의 연기는 만섭 그 자체다. 오버하지 않는다. 역할의 옷을 그대로 입은 ‘생활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자신을 위한 맞춤 영화인 듯 안재홍은 러닝타임 2시간을 힘 있게 이끌어간다. 만섭의 주변 인물들도 여느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설정이다. 캐릭터들의 향연은 쉴새없이 웃음 포인트를 만든다.
웃겼다가 울렸다가 ‘족구왕’은 이 시대 청춘들에게 고한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찌질해 보이면 어떤가. 순간순간이 청춘이고 남이 뭐라고 하던 하고 싶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청춘 ‘족구왕’이다. ‘그땐 그랬지’가 아닌 ‘늦지 않았어. 지금도 청춘이야’라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들게 한다.
제작비 1억의 독립영화이지만 반응은 블록버스터급이다. SNS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포털사이트 평점은 9점대를 넘었다. 지난 21일 전국 56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개봉 3일째 관객 6000명을 동원했다. ‘군도’ ‘명량’ ‘해적’ ‘해무’ 등 대형영화들의 스크린 장악에도 선방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hy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