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이 넘는 미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뒤집을 만한 소식이 나왔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가 재키 로빈슨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21일(현지시간) 재키 로빈슨이 데뷔하기 63년 전인 1884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모세 플리트 워커(1856~1924)라는 흑인 선수가 1년간 활약했다고 스포츠면 머리기사를 통해 소개했다.
여기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마운틴 플레전트에서 출생한 워커는 1883년 마이너리그인 톨레도 블루스타킹스에서 포수로 데뷔했다.
워커는 이듬해 팀이 빅리그로 승격하면서 1년간 42게임에 출장해 타율 0.263을 기록했다.
신문은 앞서 노예 출신인 윌리엄 에드워드 화이트가 1879년 대타로 1게임에 출전한 적이 있지만, 한 시즌을 거의 소화했다는 점에서 워커가 최초의 메이저리그 흑인선수라고 강조했다.
워커는 1884년 부상 탓에 야구를 그만 뒀다. 그러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건 골수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당시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 감독인 캡 앤더슨이었다. 캡 앤더슨은 야구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흑인과는 야구를 할 수 없다”면서 워커를 대놓고 배척했다. 앤더슨은 1887년 워커가 인터내셔널리그 뉴어크 팀에서 활동했을 때 꼼수를 부려 그를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퇴출시켰다.
신문은 워커가 리그에서 추방된 날 인터내셔널리그 감독들이 앞으론 흑인선수와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여기에 앤더슨이 적극 개입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재키 로빈슨이 등장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에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흑인 선수가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워커는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남부 경기에서는 호텔에 투숙하지 못하고 공원 벤치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으며, 시즌 말기에는 살해 위협이 담긴 편지들을 받기도 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 말고도 사업가이자 신문 발행인,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포탄과 영사기 특허를 내기도 했으며, 인종 관계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워커는 1891년 무명팀 시카큐스 스타에서 활동할 당시 인종모독적 언사를 한 한 시민을 흉기로 찔러 살인죄로 기소됐다. 당시 시라큐스쿠리어 보도에 따르면 워커는 백인 배심원 12명과 많은 재판 참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재판에서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워커는 점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술에 의지하면서 폭력적으로 변했으며, 사기를 저지르는 등 인생 막장을 전전하다가 1924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신문은 그에 대한 기록이라고는 ‘야구 명예의 전당’ 212쪽에 나오는 선수생활 기록이 전부라고 덧붙였다.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