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추모 기사가 쏟아진다. 빈소 표정에서부터 조문 행렬, 사망 원인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황망한 빛이 역력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이기에 그를 재조명하는 글도 많다. 신해철은 온 국민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가 낳은 최고의 스타였고, 싱어송라이터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솔로 활동도 성공적이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처럼 기존 가요계 문법으로 다가간 곡도 대박을 터뜨렸지만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길 위에서’ 등 다채로운 장르의 실험적인 곡의 히트는 당시 댄스와 발라드로 양분된 가요계에 큰 자양분이 됐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아이돌 가수로 현실에 안주했을 법도 한데 밴드 ‘넥스트(N.EX.T·New Experiment Team)’를 결성해 팀 이름처럼 새로운 실험에 매진한 것도 아티스트로서의 위치를 공고하게 했다. 락도 얼마든지 주류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고, 한국 락을 서양 락보다 한수 아래로 보던 마니아들의 인식을 바꿔 놓기도 했다. 락에만 그치지 않고 테크노와 재즈 등 다양한 장르로의 외연 확장도 끊임없이 시도했다. 인디 뮤지션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다.
신해철 하면 음악적 평가 못지않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시장’이다. 그는 1996년 4월부터 MBC 라디오 ‘FM 음악도시’ 디제이를 맡았다. 당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 사연과 신청곡이라는 단순한 방식으로 진행됐던 것과는 달리 ‘FM 음악도시’는 다양한 코너와 철저히 음악성에 기초한 선곡으로 치열한 0시대 전쟁에서 압도적인 청취율을 기록했다.
신해철은 이전에도 디제이를 맡은 적이 있었지만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것은 ‘FM 음악도시’가 처음이었다. 안혜란 PD는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 청취자들에게 얻어 갈 수 있는 한 가지를 주자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다”며 “대중적 인기가 높은 가요를 무조건 틀지 않았다. 각 분야 음악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1시간이나 들여 편성했다. 초기 진행자였던 신해철이 음악도시의 ‘시장’을 자처하며 색깔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밝혔다.
그는 ‘FM 음악도시’에서 무대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를 유지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동네 형·오빠’를 자처했다. 거창한 쇼케이스 없이 신곡 ‘Here I Stand For You’를 맨 처음 공개한 곳이 라디오였을 정도다. 정치, 경제, 사회 등 현안 이슈에 대해 조목조목 짚으면서도 소위 ‘중2병’을 앓고 있는 청년층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가수 신해철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디제이 신해철의 말에는 귀를 기울였을 정도였다.
현재 뮤지션이자 방송인으로 각광받고 있는 유희열이 스타덤에 오른 것도 ‘FM 음악도시’ 공이 크다. 당시 수요일 게스트로 참여했던 유희열은 무명에 가까웠지만 신해철이 차기 디제이로 적극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팝 칼럼니스트 성우진이 참여한 해외 차트 소식, 한 명의 국내 뮤지션을 정해 헌정한 코너, 남희석 출연분 등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가왕’ 조용필이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신해철은 1997년 9월 ‘FM 음악도시’에서 하차할 당시 “여러분들이 행복을 들고 있는 이상 누구도 여러분들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 스스로에게는 언제나 승리자고 챔피언”이라고 전했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떠나가는 마지막 방송이었지만 청취자들은 그마저도 그답다 생각했다. 이후 ‘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던 신해철은 2012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디제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방송사 개편 때마다 오매불망 저음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기다렸던 팬들을 뒤로 하고 ‘시장’이자 ‘마왕’은 이렇게 떠났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신해철에 대해 몰랐을 법한 이야기②] “서태지는 송곳, 나보다 영리하고 인내심 강해”
[신해철에 대해 몰랐을 법한 이야기③] 그가 직접 뽑은 ‘나의 명곡’ 15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