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강모(48)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 5억원을 제외하면 다른 빚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부촌’으로 유명한 서울 서초동의 146㎡(약 44평) 넓이의 아파트에서 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직과 연이은 재취업 실패로 힘들긴 했어도 이런 극단적인 짓을 벌일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비극은 컴퓨터 관련 업체를 다니던 강씨가 3년 전 실직하면서 시작됐다. 강씨는 재취업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40대 중반의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강씨는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도 ‘생활수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어찌 보면 진짜 비극의 시작은 실직이 아닌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모아놓은 돈은 바닥을 보였고 강씨는 2012년 11월쯤 자신이 살고 있던 대형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빌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씨는 대출금으로 아내에게 생활비를 매달 400만원씩 줬다. 나머지는 주식에 투자하며 ‘대박’을 노렸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돈은 1억3000만원이다. 그동안 지출된 생활비 1억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4억원 중 2억7000만원을 날린 것이다.
그렇다고 강씨가 재기의 기회가 없는 게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2004년 5월쯤 이 아파트를 구입했고 현재 시가는 대략 8∼10억원 수준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5억원 외에 다른 빚도 없는 상태였다”며 “집을 팔고 생활수준을 낮추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탓에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면서 “양쪽 부모는 모두 강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강씨가 가족을 살해한 뒤 충북 청주, 경북 상주, 경북 문경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해할 수 없는 동선을 보인 까닭도 정신적 공황 상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찰은 “강씨가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온 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달렸다고 한다”면서 “그는 심지어 자신이 검거된 장소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강씨는 두 딸에게 직장을 잃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실직 후 2년간 선후배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다. 그는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어지자 최근 1년간은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에 고시원을 얻어 낮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