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40대女의 ‘영화같이 치밀한’ 방화…차용증 위조해 유족에 돈 받을 계획까지

양양 40대女의 ‘영화같이 치밀한’ 방화…차용증 위조해 유족에 돈 받을 계획까지

기사승인 2015-01-09 13:32:55
지난달 29일 강원도 양양에서 일가족 4명이 희생된 방화 참변은 빚 독촉에서 벗어나려던 이웃 40대 여성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속초경찰서는 9일 오전 중간 수사결과를 통해 살인 및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한 이모(41·여)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이날 중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9시 30분 양양군 현남면 정자리 박모(39·여)씨의 집에 찾아가 박씨와 세 자녀 등 일가족에게 수면제를 넣은 음료수를 먹인 뒤, 이들이 잠이 든 사이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와 박씨는 평소 서로를 ‘언니’ ‘동생’으로 부르는 등 가깝게 지내던 이웃 사이였다.

절친했던 둘의 사이는 돈 문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2013년 9월 박씨에게 1800만원을 빌렸다. 하지만 나눠서 갚기로 한 원금과 이자를 주지 못하기 시작하면서 박씨와 말다툼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지난달 26일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 박씨가 욕설을 한 것에 격분한 나머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2시께 강릉의 한 병원에서 수면제(졸피뎀) 28정을 처방받아 인근 약국에서 산 뒤 휘발유, 캔맥주와 음료수 등을 차례로 구입했다.

이후 이씨는 자신의 집에서 수면제를 물에 희석해 캔맥주와 음료수에 넣고서 피해자인 박씨의 집에 찾아갔으며, 박씨 등이 이를 먹고 잠이 든 사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사건 직후 숨진 박씨 등 일가족의 시신 상태가 일반적인 화재 현장과 다른 점, 현장에서 기름 냄새(유증)가 난 점, 부검결과 질식사 소견을 보인 일가족의 혈액 등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으로 미뤄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씨는 박씨에 대해 ‘평소 우울증이 있었고, 휘발유 구입을 문의했다’는 등 자살이나 가정 불화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을 이웃 주민들에게 흘렸다.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이씨는 자신의 채무 사실을 숨기려고 위조된 차용증을 숨진 박씨의 유족에게 보여주며 돈을 갚으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씨는 박씨의 집에 불을 낸 직후에 119 소방차량이 출동하자 가장 먼저 뒤따라가 진화 상황을 지켜보며 목격자 행세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지인들에게 ‘숨진 피해자 박씨의 옷이 일부 벗겨져 있었다’며 범죄 가능성도 있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이씨를 불러 세 차례 참고인 조사를 벌였으나, 매번 오락가락한 진술을 하자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것임을 간파했다.

사건 당일 이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주택화재 전후 박씨의 집 인근 CCTV에 포착된 사실도 확보했다.

이때부터 경찰은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탐문수사를 통해 수면제와 휘발유를 구입한 행적 등 여러 정황 증거를 확보, 지난 8일 오후 3시 50분쯤 서울시 강남대로 인근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지난 8일 이씨의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이씨가 범행 당시 입었던 옷 등을 확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식을 의뢰했다.

담당 경찰은 “이씨는 피해자가 남편과 별거 중이라는 얘기를 부각시켜 수사 방향을 부부갈등에 의한 범죄로 유도하는 등 수사에 혼선까지 주는 치밀함을 보였다”며 “공범 여부와 또 다른 범죄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섭 기자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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