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 일명 ‘대구 돈벼락’ 사건이 화제였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대구 달서구 월배로 서부정류장 앞 왕복 8차로였습니다. 한 남성이 중앙선 부근에서 서성이다 갑자기 횡단보도 한복판에 5만원권 지폐를 뿌렸습니다. 약 800만원이었습니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던 사람들. 옆에서 슬금슬금 다가온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돈을 줍기 시작하자 이내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운전 중이던 사람들도 차를 세우고 내려서 줍기 바빴습니다. 공개된 당시 CCTV(캡처 화면)를 보니 800만원이란 큰 돈은 1분 만에 사라졌습니다.
주위 눈치고 체면이고 신경 안 쓰고 5만원권 한 장이라도 더 줍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의 모습. 돈에 종속되고 조종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한 편의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해는 됩니다. 돈에 웃고 돈에 울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일상에서 상상으로나 가능했던 ‘돈벼락’이 떨어졌는데 어느 누가 혹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저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후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서민이 피땀 흘려 번 돈 중에 사연 없는 돈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건 특히 그렇더군요. 할아버지가 고물 수집을 하며 조금씩 모아 정신장애가 있던 손자 안모(28·무직)씨에게 물려준 돈이었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안 씨가 사고를 낸 것이지요.
길에 떨어진 돈이 누구의 소유인지 알면서 가져가면 형법 상 절도죄가 성립됩니다. 지난해 말 홍콩에서 일어났던 현금수송차 돈벼락 사건이 그렇습니다. 만일 누구의 소유인지 모르고 가져가도 죄가 됩니다. 이탈한 점유물을 마음대로 가져가선 안 되는 점유이탈물횡령죄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도로에 돈을 뿌린 건 소유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워 간 사람들은 안씨의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그가 정신장애자라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듯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돈을 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만원이 관할 파출소를 통해 회수됐습니다. 각박한 사회지만 그래도 양심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훈훈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같은 200만원이지만 서서히 느낌이 달라집니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요. 벌써 해가 바뀌고 9일이 지났습니다. 9일 오후 관할인 대구 송현지구대에 전화해보니 “초반에 들어온 200만원에서 더 이상 들어온 게 없다”고 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엔 이 200만원이 ‘살아있는 양심’을 보여줬다면, 이젠 ‘멈춰버린 양심’을 나타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CCTV를 보니 족히 20명은 몰려든 것 같더군요. 1분이란 시간을 고려해보면 아무리 혼자 민첩하게 가져간 사람이라도 100만원도 훨씬 못 되게 챙겼을 겁니다.
물론 공짜 돈은 액수와 상관없이 좋겠죠. 하지만 젊은 사람도 아닌 노인이 고물 수집해 모은 몇 만원, 몇 십 만원 끌어안고 있으면 사는 게 달라집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