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영원한 3급’으로 마무리 된 박근혜 신년 기자회견

[친절한 쿡기자] ‘영원한 3급’으로 마무리 된 박근혜 신년 기자회견

기사승인 2015-01-12 14:48:55

“한 국가가 ‘영원한 3급’을 넘어 ‘강1급’(골프로 치면 싱글핸디)이나 ‘프로’의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강국의 기준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이 단계에 필요한 새로운 기준은 디그니티(dignity)이다.”

지난해 암투병 끝에 향년 53세로 별세한 유명 인문학 저술·번역가 고(故) 남경태 씨가 저서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에서 말한 ‘진정한 강국의 조건’입니다. 여기서 고인이 말한 전통적인 강국의 기준은 GDP나 사회간접자본처럼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경제 관련 외형적 수치들입니다. 이 단계에서 참된 선진국·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그니티’는 ‘품격’ ‘존엄성’ 정도로 해석될 수 있고, 국가의 품격은 정교한 사회적 메커니즘입니다. 그리고 정교한 사회적 메커니즘은 그 사회가 약자나 소수자를 대우하는 방식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입니다.

12일 오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불경기가 지속되는데다 최근의 비선실세 의혹까지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이 워낙 많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 될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바라는 건 오히려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웠던 건 마지막 질의응답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답이었습니다. CBS 김학일 기자가 ‘훗날 국민들로부터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경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른 궤도’를 언급하면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30년 성장, 경제부흥화를 이야기했습니다. ‘평화통일의 기반’도 나왔습니다.

약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연설에서 노동 개혁, 등록금 문제에 힘들어하는 대학생을 언급했고, 질의응답 시간에 기자가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묻자 “마음이 무겁다. 정부로선 (노사정 위원회의) 원활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정작 ‘기억되고 싶은 모습’ 속에 약자는 없었습니다.

이 질문은 어찌 보면 이날의 ‘엑기스’였을지도 모릅니다. 남은 임기에 있어 박 대통령의 시선이 어디 어디에 꽂혀있는지가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중심이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연히 중심이 돼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는 걸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기억되고 싶은 모습에 약자를 돌보는 것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건 다소 씁쓸합니다.

고(故) 남경태씨가 말한 ‘3급’은 ‘3류’처럼 부정적 의미의 표현이 아니라 바둑을 빗댄 것입니다. 바둑의 최하급인 18급에서 3급까지는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올라가는데, 거기서부턴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고 ‘영원한 3급’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이 단계부터는 단순히 했던 노력을 더 하는 것으로는 안 되고 새로운 시각 전환에 나서야 실력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발전도 이와 비슷해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한 후엔 새롭고도 섬세한 패러다임이 있어야 진정한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것이 곧 약자에 대한 돌봄이 ‘당연시’ 되는 ‘디그니티’라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마지막 질의응답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약자에 대한 언급을 한마디라도 했다면 좀 더 품격이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