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국가대표 유격수 강정호(28)가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하게 되면서 이제 팬들의 관심은 류현진(28·LA다저스)의 맞대결에 쏠리게 됐다. 87년생 동갑인 이들의 국내 전적은 류현진의 판정승이라고 볼 수 있다. 강정호는 류현진을 상대로 0.176(34타수6안타)를 기록했다.
그럼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떨까. 심리학이라는 스포츠에선 다소 ‘엉뚱할 수 있는’ 관점에서 둘의 맞대결을 분석해 보겠다.
심리학에는 ‘최적 각성 수준(Optimal Level of Arousal)’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은 요키스(Yerkes)와 도슨(Dodson)의 연구(1908)에서 발전됐다. 경기장에서 야구팬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있고 반대로 부담스러움을 느껴서 실력발휘가 되지 않는 선수도 있다. 이것은 ‘각성 수준(Arousal level)’이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각성 수준은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보통 각성수준을 때와 장소에 맞게 적절하게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 즉, 긴장감이 높아지면 산이나 바다를 보며 낮추려한다. 반대로 긴장감이 너무 없으면 놀이기구를 타거나 경기를 보면서 긴장감을 높이려고 한다. 긴장감이 낮은 것은 각성 수준이 낮은 것이다. 이 때 도서관이나 시험장에서는 주위에 글씨 쓰는 소리까지도 들리게 된다. 각성 수준이 낮다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반대로 경기장이나 콘서트장에서는 주위의 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때는 반대로 긴장감이 너무 높아서 각성 수준을 낮춰서 정상을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강정호와 류현진의 경우 타고난 기질이 각성 수준이 높은지 아니면 낮은지에 따라 맞대결의 결과가 달라진다. 그리고 훈련에 따라 그 결과는 변하게 될 것이다. 경기를 보면 둘 다 각성 수준이 상당히 낮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쉽게 긴장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기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의 몸은 경기장의 팬들의 함성에 흔들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1회에서 9회까지 어떤 흐름이냐에 따라 타고난 둘의 낮은 각성 수준도 변하게 된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진출 후 1회에 점수를 내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긴장을 하고 적당한 흥분이 필요한 1회에 타고난 낮은 각성 수준 때문에 몸이 반응하지 않은 것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반으로 가면서 강해지는 류현진은 2012년 10월 4일 강정호에게 7회에 홈런을 맞은 적이 있다. 각성 수준이 충분히 높았을 7회에 홈런을 맞은 이유는 바로 이 때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는 것과 전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류현진과 강정호는 둘 다 무서울 정도로 각성 수준이 낮다. 좀처럼 긴장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그만큼 멘탈은 타고났다. 따라서 맞대결의 승부는 둘 중에 어느 한 명이라도 욕심이나 스스로에게 자만심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 생기는 순간에 결정될 것이다.
17일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의 넥센 히어로즈 스프링캠프 현장에서 류현진이 강정호를 만났었다. 둘은 저녁에 밥을 먹기로 선약했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오전에 개인 훈련을 마치고 일찍 도착해서 강정호에게 달려가 빨리 끝내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강정호는 신경도 쓰지 않고 훈련을 끝까지 마쳤다고 한다. 그 때문에 류현진은 3시간을 기다렸다. 이 때는 아마도 강정호의 각성 수준이 높은 상태였을 것이다.
현지 팬들이나 구단 관계자들은 더 이상 류현진에 대한 의구심은 없다. 반대로 강정호에 대해서는 가지고 있다. 류현진은 우리 국민의 변함없는 응원을 발판 삼아 낮아진 각성 수준을 높이고 강정호는 빅리그 데뷔로 높아진 각성 수준을 한국 최고의 유격수라는 자신감으로 낮추는 것이 과제이다. 그러면 팬들에게 남은 건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펼치는 최고의 맞대결이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 =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