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심정수의 추억…굵은 팔뚝보다 ‘굵은 눈물’이 떠오르는 헤라클레스

[친절한 쿡기자] 심정수의 추억…굵은 팔뚝보다 ‘굵은 눈물’이 떠오르는 헤라클레스

기사승인 2015-01-19 12:15:55

아침에 출근하니 ‘심정수’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 있었습니다. 왜인가 봤더니 1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 있는 LG 트윈스 스프링캠프에 깜짝 등장하면서 근황이 전해진 겁니다. 미국에서 ‘야구 대디’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더군요.

‘심정수’. 야구 팬이라면 반가운 이름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민타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과 함께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홈런타자였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당시 “이승엽보다 심정수가 더 상대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던 투수가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그의 별명은 ‘헤라클레스’였습니다. 터질듯한 근육질의 몸과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을 보면 헤라클레스말고 붙일 다른 별명이 있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어린 시절이라 정확한 날짜나 경기는 떠오르지 않지만, 심정수가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던 시절 타석에 들어서자 하일성 해설위원이 “어휴, 심정수 저 팔뚝 좀 보세요”라고 해설이 아니라 ‘감탄’을 했던 순간만큼은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사실 심정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굵은 팔뚝이 아니라 굵은 눈물입니다. 구릿빛 피부에 산만한 덩치를 하고 홈런을 펑펑 날려대던 야구선수에 대해 가장 강렬했던 기억이 하필 눈물이라니…. 참 안 어울리지만 사실입니다.

2000년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파동이 있었습니다. 그해 1월 22일 선수들은 송진우(현 KBS N 스포츠 해설위원)를 초대 회장으로 한 총회를 열었습니다. 지금도 송 위원하면 가끔 언론 등에서 ‘회장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선수들의 ‘노동조합’ 격인 선수협이 출범을 한다니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구단들은 ‘역공’을 가했습니다. KBO는 출범에 서명한 선수들의 자유계약선수(FA) 방출까지 결의했죠. 정규시즌이 시작하면서 잠잠해졌지만, 그해 12월에 선수들은 구단들의 반대 속에 재결성을 시도했고, 이때 KBO가 송진우 마해영 박충식 양준혁 최태원 심정수 등 선수협 집행부를 방출하면서 갈등이 커졌습니다.

당시 심정수는 언론 카메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 마디 하다가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리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10년도 훨씬 넘은 일이라 그 때 심정수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까진 기억이 안나 과거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고맙게도 남아있더군요.

<“이 길이 올바른 길이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이제 야구를 시작하는 후배들의 본보기가 돼야 할 선배로서 떳떳하고 싶었습니다”

차분하게 자신의 심경을 밝히던 심정수의 눈가가 점점 붉어지기 시작한 것은 마음에 품었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였다.

“아버님의 만류도 뿌리쳤습니다…”

심정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카메라를 피해 고개를 떨군 심정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변을 둘러싼 기자들까지도 숙연해지는 듯했다.

그 큰 덩치의 ‘헤라클레스’ 심정수가 눈물을 흘리게 되기까지엔 사연이 많았다. 지난 해 제1기 선수협 출범 당시 심정수는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심정수의 아버지는 아들 종원이를 고아원에 보내겠다며 소매를 붙잡았던 것. 그때는 부정(父情) 때문에 포기했지만 이번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구단의 압력도 마음을 괴롭혔다. 이날 심정수는 “구단 면접 때 선수가 선수된 도리를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선수협에 참여하면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심정수는 목이 탔던지 생수 한 잔을 마시고 자리를 떠났다. 눈가에 붉은 기운을 남긴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난 심정수.

팬들은 그가 다시 그라운드에 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00년 12월 21일 동아닷컴 기사입니다.

은퇴(2008년)한지도 오래된 그가 단 한 번 깜짝 방문에 포털사이트 검색어가 될 정도로 팬들의 높은 관심을 받는 건, 그가 실력이 좋았던 운동선수이기도 했지만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그리고 후배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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