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는 모 저축은행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발신자가 댄 저축은행의 이름은 하씨가 실제로 상당 기간 거래를 해 온 곳이었다.
발신자는 “하일성 고객님 맞느냐”며 “우수 고객이어서 5000만원짜리 저리 대출이 가능하다. 사용하시겠느냐”고 물었다. 하씨는 거래를 한 은행이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대출을 받겠다고 했다.
이 직원은 이어 은행 로고와 팩스 번호 등이 새겨진 대출 관련 제출 서류를 하씨에게 팩스로 보내왔고, 하씨는 이를 직접 작성해 보냈다.
이어 ‘대출을 받기 전에 신용보증기금에 세금을 내야 한다’며 계좌번호를 알려줬고, 하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두 차례에 걸쳐 340여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다. 하씨가 돈을 입금한 후 발신자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계좌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이 사용하는 대포통장 계좌였고, 하씨가 받은 서류 및 팩스번호 역시 전부 거래 은행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하씨는 경찰조사에서 “‘공인이니 방문하지 않고 믿고 서류로 대출해주는 것’이라고 했다”며 “피해를 보고 나니까 그때야 뭔가 잘못된 것 같더라”라고 진술했다.
하씨에게 사기 친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른 피해자 40여명의 정보 역시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대부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돈을 입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이 조직의 지시를 받아 40여명으로부터 모두 2억8000만원 상당의 피해 금액을 인출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로 곽모(35)씨를 구속하고 대포통장 명의를 빌려준 강모(46)씨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는 한편 곽씨 등에게 지시한 사기 조직의 총책을 검거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