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인천 송도의 한 어린이집 교사(사진)가 음식을 뱉는다는 이유로 네 살배기를 폭행한 소식이 전해져 온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또 부평에서도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아이에게 주먹질을 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앉을 것으로 보인다.
이 교사들도 한 가정의 딸이었을 것이고 부모로부터 양육 받아 성장했을 것이다. 근데 어떻게 폭력이라는(그것도 아이를 상대로 한) 무늬를 지니게 되었을까? 결과는 과정을 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물은 뇌의 성장이 최대 1년이다. 1년이면 지능이 화석화된다. 하지만 인간은 10년이다. 10년 동안 부모로부터 반복된 말, 행동, 감정을 통해 ‘부모시스템’에 중독된다.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감정 없는’ 말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들의 10살 이전의 과정을 분석해보면, 5살 이전 부모 사이에서 지속적인 말다툼이나 애정 없는 관계를 경험한다.
이런 경우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새엄마가 들어와 동생이 생긴다. 모든 관심이 동생에게 돌아가면서 세상을 잃어버린 것 같은 감정을 이때 처음 한다. 이후 친엄마에게 옮겨진 아이는 7살쯤 돼 새아빠가 생긴다. 새아빠와 친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에게 또 다시 두 번째 세상을 잃어버린다.
마지막으로 조부모에게 맡겨져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친구들에게서 자신이 잃은 ‘엄마 아빠 세상’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생긴다. 이때 세상을 다 가진 친구들과 괴리감을 느끼고는 자신처럼 세상을 잃은 친구가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이미 받았어야 할 사랑의 말, 행동, 감정의 공간에 욕설(말), 싸움(행동), 화나 분노(감정)를 채우게 된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쯤에 모국어의 ‘언어빅뱅시기’를 겪으면서 부정적인 표현은 폭발한다.
열정은 100도 온도처럼 끓어야하지만 부모라는 세상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끓는 물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싶어 하는 용암과 같다. 1200도가 넘는 용암은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이런 용암과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무섭다고 고백한다. 용암같이 돼버린 현재의 자신을 보며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어한다.
아이는 늘 그 자리에 서있다. 그 아이를 이리저리로 옮기는 것은 그 아이를 낳은 부모 자신이다. ‘1등’ 이라는 자리에, ‘성공’이라는 자리에, ‘부자’라는 자리에 옮겨놓은 아이는 ‘부모의 아바타’로 성장해 또 다시 자신의 아바타를 생산해 조종할 것이다.
부모의 아픔을 그대로 자녀에게 대물려 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시스템이다. 어느 부모도 자신들의 잘못된 시스템을 인지해서 고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 자신의 거울을 넘어선 그 자체다. 거울은 보고 싶을 때만 보지만 자녀는 보고 싶지 않을 때도 눈 앞에 있는 부모 그 자체다. 아이를 보며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일각에서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폭력의 원인으로 월급 등 처우개선의 문제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전부라면 폭력이 ‘상습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외부적인 문제도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폭력의 죄책감과 반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교사 자신의 가정시스템의 문제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내부적인 문제가 상처로 남았기 때문에 자신 또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피해의식은 잘못을 뉘우치며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늘어놓게 만들게 된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하지만 부모는 명사가 아니라 감탄사가 돼야한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