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아시안컵 8강전 우즈베키스탄(우즈벡)과의 경기에서 ‘차미네이터’ 차두리는 쐐기골을 어시스트하며 우리 대표팀의 2대0 승리에 일조했다. 이날 경기에서 차두리는 벤치 멤버였다. 후반 25분에 김창수 대신 교체 출전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해 당시 SBS에서 해설위원으로도 나섰던 것에 대해 배성재 아나운서가 “저런 선수가 왜 해설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환상적인 돌파와 어시스트였다.
차두리는 하프라인 이전부터 치고 70미터를 내달렸다. 우즈벡 선수들은 차두리를 따라잡지 못했다. 골대 근처에서 손흥민에게 완벽한 패스를 내줬다.
어떻게 35세의, 은퇴를 선언했던 벤치멤버 차두리가 이렇게 놀랄만한 질주를 할 수 있었을까. 심리학자인 개인적 관점에선 그 성공의 비결 중 하나로 ‘생각운동’을 꼽고 싶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단체 구기 스포츠에는 벤치 멤버(농구는 식스맨이라고 표현)가 있다. 이들은 ‘생각운동’을 통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국제학술지 신경생리학 저널에 ‘생각운동’만으로 강한 근육을 만들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팀은 29명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눠서 연구했다. 모두 팔에 깁스를 했다. A그룹은 매일 약 11분, 매주 5일, 한 달 동안 생각으로 근육 운동을 시켰다. B그룹은 아무 것도 시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A그룹은 두 배 강하게 됐다. 뇌에서 기억, 집중, 사고, 언어, 각성 및 의식 등의 중요기능을 담당하는 대뇌 피질과 근육 움직임의 관계를 증명한 것이다.
주전으로 시합에 출전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벤치멤버들에게는 ‘상상운동’을 통해 차두리처럼 주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합에 뛰지 못하면 실전감각은 떨어질 수 있겠지만 감독이 경기를 바라보는 ‘조감도(Bird’s eye)‘의 넓은 시각을 벤치멤버도 가질 수 있다.
차두리는 “공격에 도움이 되란 감독님의 주문이 있었다. 나는 후반에 투입되어 체력이 남은 상태였다. 반면 상대는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이를 이용해 돌파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통해 두 가지의 심리적 분석을 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감독님의 주문’을 머리에 새기고 경기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대는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다’에서 브라질 월드컵 때 해설을 하면서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때 해설을 하고 있었을까요”라는 배 아나운서의 말에 국민들은 그 당시 선수로 뛰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아나운서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주전이 아닌 벤치멤버를 통해 ‘생각운동’을 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차두리 선수를 통해 다른 벤치 멤버들이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아쉬움보다는 ‘생각운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준비해 주전으로 발돋움하길 바란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