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 “무책임 공약에 딜레마, 자존심 때문에 옹고집”…박근혜 대통령에 ‘핵직구’

서울대 이준구 교수 “무책임 공약에 딜레마, 자존심 때문에 옹고집”…박근혜 대통령에 ‘핵직구’

기사승인 2015-02-09 22:15:55
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캡처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재정학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준구(66)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증세 관련 발언에 대해 반박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교수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오늘 신문을 보니 대통령이 증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발언을 했다는군요”라며 “그런데 증세를 반대하는 논리가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데 여러분은 납득이 가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이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뭐가 되는 것 같아도 링거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이 반짝하다 마는 그런 위험을 생각 안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 “왜 증세라는 게 링거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이 반짝하다 마는 겁니까”라며 “우리가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국가가 빚내서 선심 쓰는 바람이 나라살림이 거덜이 나는 걸 막자는 의도 아닙니까. 링거 주사를 놓자는 게 아니라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항생제를 놓자는 말로 해석해야 맞는 것 같은데요”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오히려 이 발언에서 ‘증세’라는 말을 ‘감세’라는 정반대의 말로 바꾸면 이해가 잘 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의 발언 중 ‘아무리 세금을 거둬도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기업이 투자 의지가 없고 국민들이 창업과 일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부분에 대해 “만약 증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경제가 더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런 발언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를 위시한 증세론자 어느 누구도 증세가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가 살아나면 저절로 세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구태여 증세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이라며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경제가 단기간에 되살아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증세를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단기간에 경제가 되살아난다는 실현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가상적 상황을 설정해 놓고 정책을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의 공약 중 대표적 성격을 갖는 ‘증세 없는 복지 확충’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이 교수는 “(‘증세 없는 복지 확충’이라는) 무책임한 공약을 내거는 바람에 대통령은 이래저래 공약의 일부분을 저버려야 할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복지지출을 축소하면 공약의 후반부 ‘복지 확충’을 위배하는 셈이 되고, 반면에 증세를 하기로 하면 전반부 ‘증세 없는’을 위배하는 결과를 빚게 되구요”라며 “증세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만이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라는 착각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내 생각으로는 그 공약의 전반부 ‘증세 없는’을 위배하는 쪽이 훨씬 덜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 같은데, 왜 후반부 ‘복지 확충’은 버리고 전반부만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보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라며 “만약 자존심 때문에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일에서 옹고집을 부린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자존심을 내던지고 어떤 방식으로 잘못된 공약의 후유증을 수습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가장 작은 피해를 가져올 수 있을지 고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조언했다.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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