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요즘 언론사들이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제목에 ‘충격’이란 표현을 남발하는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죠. 그런데 이번엔 충분히 써도 될 것 같습니다.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 성북구 정릉 소재 국민대학교 ‘단체 카톡방 성추행’ 사건 이야기입니다.
지난 15일 국민대 해당 학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려진 이 학과 소모임 남학생 카톡방에서 오고 간 음담패설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입니다. 이 카톡방은 공지사항 전파 등을 목적으로 지난해 5월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여학생들의 사진을 올리고 실명을 거론하면서 “가슴은 D컵이지만 얼굴은 별로니…(후략)”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성추행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도가 훨씬 심한 내용도 있지만 차마 기사에 쓸 수 없는 수준입니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이들이 여학생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위안부’까지 거론했다는 겁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교학생들의 역사관이 이 모양이라는 점 자체로도 한숨이 나오지만, 더 좌절스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어느 대학교나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국민대는 좀 더 의미 있는 설립 역사를 가진 학교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국민대는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해공 신익희, 백범 김구, 우사 김규식 선생 등이 중심이 돼 1946년에 설립된 광복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교입니다. 신익희 선생이 초대 학장이었죠.
국민대의 교육목표에 ‘인본주의에 기반한 지도자’ ‘지식사회를 선도하는 전문인’ ‘세계화·정보화에 부응하는 실용인’과 함께 ‘민족정체성을 지닌 민족인’이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설립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충격의 카톡방 대화는 이 학과 전 학생회장, 해당 단과대 전 학생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12월 5일 학내 커뮤니티에 해당 사안을 폭로하는 기고가 실리면서 공론화됐지만 학교나 학생회 차원의 별다른 조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지난 12일에 학교 측이 사건을 파악했고, 하루 뒤 학생처장, 해당 학과 교수, 총학생회장 등이 참관한 가운데 해당 학과 긴급 비상대책위원회의가 열려 해당 소모임을 해산하고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학회에서 영구제명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문제의 소모임 대표는 지난 14일 사과문을 통해 “학과뿐 아니라 학교 전체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게 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 “그릇된 행동과 관련한 처벌과 징계를 관련자가 모두 겸허히 받을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측은 대학본부 징계위원회를 이르면 16일에 열어 가해 학생들에 대한 처분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신익희, 김구, 김규식 선생 등 임시정부 각료들이 국민대를 세울 때는 이제 막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해야만 일본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이 있었겠죠.
딱 70년 후에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일제가 준 비극의 상징 중 하나인 ‘위안부’를 성추행에 들먹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