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계속 벗는데 왜 야하지 않은 걸까

[쿡리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계속 벗는데 왜 야하지 않은 걸까

기사승인 2015-02-24 10:18:55
사진=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스틸컷

*아래 기사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독자는 ‘뒤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쿠키뉴스=권남영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드디어 봤다. 소문대로 가학적인 섹스가 주요 소재다. 중반부를 넘어서며 남녀 주인공은 시도 때도 없이 알몸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뭔가 싱겁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은 영국 여성 작가 E.L.제임스가 ‘트와일라잇’(2008)을 보고 인터넷에 끄적인 팬픽션 ‘우주의 주인’을 토대로 쓰였다.

팬픽션 인기의 생명은 주요 향유 층인 여성들이 설렐 만한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 이를 충실히 수행해낸 소설은 여성 팬들의 든든한 지지에 힘입어 슈퍼 히트작이 됐다.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도 그래서다.


주인공은 27세 청년 CEO 크리스찬 그레이(제이미 도넌)다. 어린 나이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대규모 회사를 경영하는 그는 뭇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게다가 잘생긴 얼굴과 완벽한 몸매까지 갖췄다. 겉으로 보기에 누구보다 완벽한 그가 평범한 여대생인 아나스타샤 스틸(다코타 존슨)과 로맨스를 시작한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본격적인 클리셰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크리스찬은 술에 취한 아나스타샤의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와 자상하게 챙겨준다. 노트북이 고장 났다는 아나스타샤 말에 곧바로 새 것을 사서 보내주고, 헬기나 경비행기까지 동원해 이벤트를 벌인다. 여자라면 한번쯤 상상해 볼 법한 설정들이다. 그런데 너무 완벽한 왕자님 이야기는 어쩐지 점점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진다.


크리스찬의 비밀스런 성적 취향이 밝혀지며 영화는 그제야 차별점을 드러낸다.

크리스찬은 평범한 이성교제나 성관계는 거부한다. 계약서까지 만들어놓고 ‘BDSM’(결박·체벌·가학피학적성애)을 즐긴다. 영화는 이런 변태적 정사 모습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결박 도구들이나 채찍 등 소품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장면에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개봉한 북미지역 관객들 사이에서도 이런 지적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남녀 배우 사이 ‘케미’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더구나 과제를 하나씩 수행하듯 이뤄지는 일련의 섹스 신들은 그리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두 사람이 감정을 못 이기고 처음 키스하는 장면이 훨씬 더 섹시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 등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점도 아쉽다. 전체적인 구성도 그리 정교하지 않다. 가장 의아했던 건 엔딩이다. 물론 시리즈물로 제작될 작품이기에 수긍이 가긴 한다. 하지만 갑작스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시사회가 진행된 상영관 한 편에선 당황한 듯한 외마디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뭐야?”

그럼에도 아나스타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연기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복잡한 내면 감정을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입술로 고스란히 전달했다.

그런데 한 장면, 크리스찬을 만나기 전까지 처녀였다는 사실을 고백할 때는 웃음 포인트다. ‘변태’ 크리스찬이 순간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게 된다면 부디 이 장면은 놓치지 말길 바란다. 오는 25일 전야 개봉.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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