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지난해 하반기 일간지 중 판매부수 2위(710만1074부·ABC협회)인 일본의 유력 언론 아사히(朝日) 신문이 2일자 사설을 통해 70년 전 일본에서 옥사한 윤동주(1917~1945·사진) 시인을 소개하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쌍방의 노력을 촉구해 눈길을 끌고 있다.
‘비극적인 시인의 마음을 가슴 속에’라는 제목의 이 사설에서 아사히 신문은 윤 시인의 대표작 ‘서시’ 일부를 소개한 뒤 “한국병합 100년(2010년)에 맞춰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담화가 보여준 것처럼, 한국 사람들은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이 손상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설은 “그런 반면 국교 체결(1965년) 후 여러 경제협력 등으로 일본은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고 소개하고 “일본 측이 이런 최근의 행보에 관심을 편중시키고, 한국 측은 지배당한 과거에만 집착하면 접점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설은 “윤동주는 왜 성(姓)을 바꿨는지, 왜 한글만 썼는지 우리(일본)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동시에 한국 사람들도 냉정하게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 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 시인은 1942년에 일본 유학을 결심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 창씨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직전 죄책감과 자괴감을 녹여낸 듯한 내용의 ‘참회록’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사설은 “윤동주는 항상 보편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계속 생각했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있어도 절대 개인을 미워하지 않았다”는 윤동주 연구가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原泰子)씨의 평가를 전하고 “현재의 일한관계는 윤동주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사설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과거가 된다”며 한일수교 50주년인 올해를 “어떻게 장식할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만주에서 태어난 윤 시인은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유학하던 1943년 7월 한글로 시를 써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있던 중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16일 옥사했다.
시인의 70주기를 맞아 지난달 도시샤 대학과 도쿄 릿쿄(立敎)대학 등에서 추모 행사가 잇달아 열렸다.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