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지금껏 이런 영화가 있었나. 소재부터 예사롭지 않다. 욕의 고수를 뽑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니. 본격 ‘욕’ 영화 ‘헬머니’에는 듣도 보도 못한 각종 비속어들이 총망라됐다.
막연하게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다. 욕이라면 극도로 꺼리는 이가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아무리 거친 욕설도 배우 김수미를 만나니 구수해졌다. 어쩌면 이 영화는 ‘김수미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전과 3범 헬머니(김수미)가 15년 복역을 무사히 마친 뒤 교도소에서 출소하면서 시작된다. 양반집 아씨로 태어난 그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나니 욕쟁이 할머니가 돼버렸다. 오랜 교도소 생활로 병까지 얻은 헬머니에게 남은 건 이제 두 아들뿐이다. 성(姓)이 다른 첫째 승현(정만식)과 둘째 주현(김정태)다.
뒤늦게 엄마 노릇을 해보겠다고 아들들을 찾아가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도박 게임에 빠져 빚더미에 앉은 주현은 엄마가 돈을 건네자 그제야 눈에 불을 켠다. 부잣집 처가에서 데릴사위 노릇을 하고 있는 승현에게 다가가긴 더 어렵다. 그래서 헬머니는 승현네 가사도우미로 들어간다. 사돈, 며느리에게 머리를 조아려야하지만 아들, 손자 보는 낙으로 일을 한다.
조용히 여생을 살고자 했는데 생각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이름하야 욕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욕의 맛’. 양PD(이영은)에게 자꾸 섭외 전화가 걸려오지만 헬머니는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거절한다. 하지만 우승상금에 혹한 주현의 성화에 결국 출연을 결정한다.
매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온갖 비속어 폭격이 시작된다. 욕은 물론 각종 언어유희가 쏟아진다. 어떻게 이런 말들을 생각해냈을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리뷰에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신기한 건 잔뜩 욕을 들으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마저 느껴진다.
욕 배틀 참가자들 면면을 살펴보면 납득이 간다. 고객 막말에 시달리는 전화상담원,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는 외국인 노동자, ‘갑질’에도 미소를 띄워야하는 승무원, 한국에 와 욕만 실컷 배운 필리핀 여성 등…. 이들의 일갈을 단순한 욕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꽁꽁 뭉쳐졌다 터져 나온 ‘을’들의 설움이 애달프다.
영화를 보기 전엔 ‘또 뻔한 코믹영화이겠거니’ 했다. 김수미의 욕 연기도 그리 신선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 전개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헬머니’는 단순한 재미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재미와 감동을 한데 버무려 여운이 있는 웃음을 선사한다. 적어도 보고난 뒤 오래지 않아 휘발돼 버리는 코믹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한솔 감독은 “사람에게 상처주고 죽이는 욕이 있다면, 한을 풀어주고 살리는 욕도 있다는 걸 (헬머니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 ‘삐’소리 따윈 없다.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불사한 그의 패기가 왠지 고맙다. 오는 5일 개봉.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