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엄성섭 앵커의 “쓰레기” 발언이 이슈가 된 지 얼마 안 돼 또다시 유명인의 ‘욕설 파문’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장본인은 배우 이태임. 이 사건으로 이태임이 출연 중인 예능에 이어 드라마까지 하차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최근 영화 ‘헬머니’로 배우 김수미의 욕이 떠올랐다. 욕으로 사라지는 배우가 있고 욕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배우를 보면서 ‘욕의 심리학’을 요리해 보도록 하겠다.
이태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화가 나서 참고 참았던 게 폭발해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속사를 통한 공식사과에서 “그간 특정 신체부위 부각 뉴스나 악플, 작품 조기종영 등으로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 난조로 인한 입원 치료를 받았다”며 “욕설 논란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으며,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리학에서는 ‘욕’을 ‘욕구’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다중인격(multiple personality)을 가지고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상황에 따라 젠틀맨이었다가 난폭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말실수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표현으로 억압된 충동이라고 분석한다. 억압된 충동은 감정이다. 감정은 행동이나 얼굴의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바로 ‘욕’이다.
언어가 열리면 생각이 열린다.
인간은 태어나서 18개월쯤 되면 ‘의미의 확대 적용 과정’을 거친다. 부모로부터 두 손을 둥글게 그리면서 “사랑해”라는 표현을 흡수한다. 반대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안돼!”, “싫어!”, “지지, 더러워!”라는 표현을 흡수한다. 이렇게 비언어적인 방법과 언어적인 방법을 동시에 받으면서 아이들은 무의식에 감정무늬와 언어무늬를 저장해둔다. 이 때 긍정적인 무늬와 부정적인 무늬의 비율이 어떻게 저장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언어습관도 달라진다.
엄마 젖을 빨면서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입을 36개월쯤 지나면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때 저장해둔 언어의 무늬들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흡수된 부정적인 무늬를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열 살쯤 되면서 제2의 언어의 빅뱅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모국어로서 최대치의 언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머리는 새로운 단어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데 이를 채워주지 못하면 친구들이나 주변 환경을 통해 ‘욕과 성’에 관련된 단어들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어휘들은 사춘기를 지나서 자주 사용하거나 반복하게 되면 ‘화석화(fossilization)'가 된다. 긍정적인 어휘와 부정적인 어휘의 화석화 비율에 따라 생각과 행동도 결정된다.
이태임은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이태임은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거나 주변 환경 등을 통해 욕설을 많이 들어 내면엔 부정적 어휘의 화석화 비율이 긍정보다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긍정적 어휘의 화석화 비율이 더 높은 사람은 ‘감정터널’이 없을 때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오는 경우가 없다. 이태임이 욕을 했던 상황(촬영 현장)이나 상대방(오랫동안 절친하게 지내온 사이가 아닌)은 감정터널이 없는 경우다.
감정터널이 있는 관계에서는 ‘욕’이 ‘친한 사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이태임이 사용한 무의식적인 욕과 배우 김수미의 욕이 바로 이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욕’을 주고받는다. 이런 경우에는 두 사람 관계 사이에 열려있는 ‘사랑과 걱정’을 소통하는 감정터널이 존재한다.
욕을 주고받은 후 친한 사이를 증명하고 편안해 지는 터널이다. 이 감정터널을 배우 김수미는 오랜 세월 배우로서 관객들과 끊임없이 만들었다. 팬들이 김수미에게 욕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감정터널을 통해 자신이 못하는 시원한 욕을 들으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제공받는다.
이태임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지만 그 말을 들은 주변사람들과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청자들은 반감을 느끼게 돼있다. 그 이유는 감정터널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흡수해온 화석화된 욕은 식욕, 성욕처럼 욕구라는 방에 저장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송인들의 경우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화가 난다고 표현하면 시청자들이 그를 화석 취급해 버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