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다겸 기자] ‘어휘력 향상에 도움’ vs ‘학습부담 커져’
교육부가 추진하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지난해 9월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8학년 초등 3·4학년, 2019학년 초등 5·6학년 교과서에 400~500자 정도의 한자를 한글과 병기하도록 권장하는 교과서 집필기준 지침이 마련될 예정이다. 사교육 유발을 막기 위해 한자가 시험에는 출제되지 않는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한자병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돼왔다며 한자병기가 학생들의 어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교육부는 학부모의 89%, 교사 77%가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필요하다’, 학부모 83%, 교사 77.5%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긍정적이다’라고 답한 여론조사(‘학교현장, 국가·사회적 요구사항 조사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한글문화연대와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등 시민단체들은 교육부가 여론조사 결과를 부풀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해당 제도에 대해 찬반이 불분명한 답변을 빼면 찬성의견이 학부로 48.5%, 교사 47%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한문 교과가 없는 초등학교의 경우 교과서 한자병기로 인해 한자교육 학습부담 과중, 사교육비 증가 등 공교육 불신 우려가 초래 된다”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글단체들도 “한자 사교육을 부추기고 학습부담만 늘릴 뿐, 새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자병기 방침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초등교과서 한자병기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 학생들의 부모님 의견은 어떨까.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소재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들을 만나봤다.
학부모 A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습지 등을 통해 한자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방과 후 교실에도 한자수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취지는 좋지만 교과서에 한자가 쓰이면 또 다른 사교육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밝혔다.
“중·고등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텐데 굳이 초등학교 때부터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라고 입을 연 B씨는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 교과서도 어렵더라. 이런 걸 벌써 배우나 깜짝 놀랄 때도 있다”며 “여기에 한자까지 쓰여 있으면 아이들이 교과서를 볼 때 복잡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같은 반 학부모 C씨도 “아무리 시험에 안 나온다고 해도 교과서에 한자가 있으면 학습지 하나라도 더 시키게 되는 게 부모 마음”이라며 사교육 증가를 우려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학부모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6학년 두 자녀를 두고 있다고 밝힌 D씨는 “괜찮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급수시험 같은 한자 자격증 따게 하려고 아이들 한자 가르치는 부모들이 많다”며 “어차피 배울 거라면 자주 접할수록 더 좋다. 한자도 언어인데 계속 보고, 쓰고 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D씨는 실제로 자녀에게 한자를 가르친 뒤 어휘력이 좋아진 것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그는 “큰 아이가 지금 6학년인데 한자를 시키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회과목을 배우는데 거기에 나오는 어려운 용어를 한자를 배우고 나서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아서 시작했다”며 “실제로 한자를 배우고 난 다음부터 확실히 사회과목 이해를 잘 하더라”라고 밝혔다.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초등학교 한자 교육 강화 정책에 대해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초등교과서에 한자병기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새 교육과정에서의 한자 교육은 공청회를 거쳐 오는 9월에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문자정책이 초등교육, 그것도 ‘국어’와 관련돼있는 만큼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중·고등학교 교육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plkplk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