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訪美)’ 일정을 강행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의 해외 방문은 2013년 5월 미국에서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본격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1주기 날에 온 국민과 인터넷은 검은색과 노란색 리본으로 최소한의 예의를 보냈지만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박 대통령은 중남미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이 모습에 국민들은 대통령의 해외 방문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최고조에 다다르게 됐다.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예정에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지는 이유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남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 있다. 남미 방문 때도 콜롬비아 측의 사정을 고려해 제일 먼저 방문하면서 국내 실정은 고려하지 않고 다른 나라는 챙기는 모습에 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이번 미국 방문도 마찬가지이다.
10일 현재 메르스 사망자 9명, 확진환자 108명에 육박해있는 시점이다. 국가안전시스템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그 피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적 관례나 외교 성과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국가 수장의 모습은 또 다시 국민을 외면하는 걸로 보일 수 밖에 없기에 한숨만 내쉬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지도자가 도대체 왜 계속해서 중대한 국가적 상황에 해외 방문길에 오르는 것일까?
1999년 심리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대학원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차브리스(Chabris)는 사람의 집중력과 인식에 대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준다. 동영상 속에는 하얀 옷을 입은 3명과 검은 옷을 입은 3명으로 나눈 뒤, 참가자들에게 동영상에서 하얀 옷을 입은 팀이 공을 서로 몇 번이나 주고받는지 알아맞히게 했다. 그리고 이 몇 분 안 되는 동영상에는 고릴라 분장을 한 대상이 지나간다. 그것도 가운데에서 가슴을 치며 킹콩 흉내를 내고 지나간다. 놀라운 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50% 이상이 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한 것이었다.
고릴라가 분명 지나갔다고 말한 뒤 다시 참가자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줬다. 실험 참가자들은 동영상 중간에 고릴라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자신들이 어떻게 저 고릴라를 못 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 현상은 인간의 선택적 집중과 비선택적 대상에 대한 인지가 얼마나 차이를 보이는지 증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선택적 집중과 비선택적 대상에 대한 인지는 극명하게 갈린다. 박 대통령의 선택적 집중은 해외순방과 외교이고 비선택적 대상은 국민과 국가적 시스템이다.
대통령 임기기간 중에 많은 고릴라가 지나가지만 박 대통령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3명의 총리가 지나갔고, 대선 공약이던 기초연금 공약 파기가 지나갔고, 1억 건이 넘는 금융정보 유출 사건이 지나갔고, 세월호 참사도 지나갔다.
이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메르스도 지나가고 있다. 메르스에 대한 오해가 많든 적든 9명이나 사망했다. 격리자는 수천 명에 이르고 있다. 국민의 눈과 귀는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다. 제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서 체계적인 발표와 대응을 해달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의 입에서 전달되기를 바란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면 국가의 시스템을 누가 지휘하고 누가 선택하고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의 ‘선택적 집중’이 ‘국민’이어야 한다. 지금도 국민들이 실험에서의 고릴라처럼 사건마다 답답해서 가슴을 치며 제발 우리 좀 봐 달라고 외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아프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다. 눈길 한 번 보이지 않고 집에는 전혀 관심 없는 가장에게 어느 누가 마음 열고 기다릴 수 있겠는가. 답답해서 가슴을 치다보면 국민들 스스로 마음 문을 닫는다.
박 대통령의 총 2456개 단어가 사용된 예전의 한 연설문에서 59차례의 ‘경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된 단어가 바로 31차례 등장한 ‘국민’이었다. 그렇게 찾던 ‘국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국민들은 하루에 수 천 번도 더 대통령을 찾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