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여포의 방랑과 오버랩되는 이천수의 은퇴

[친절한 쿡기자] 여포의 방랑과 오버랩되는 이천수의 은퇴

기사승인 2015-11-08 09:00:55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 하면 대개 시대 최강의 무력을 떠올립니다. 전쟁터에 나갔다 하면 적 장수를 베고 마는 그의 무지막지한 무공에 천하를 평정했던 조조마저 벌벌 떨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이렇듯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지만, 그 인생은 의외로 초라했습니다. 수많은 지역을 오가며 주군을 여러 차례 갈아 치우고, 배신에 발목이 잡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고 말죠.

그를 묘사한 역사학자나 소설가들은 “다소 괴팍하고 괴이한 구석이 있는 그의 성품이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만들었다”고 평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재능의 허무한 사라짐에 허탈감마저 느껴집니다.

재능이란 건 참 오묘합니다. 능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라지만, 재능만으론 만사형통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천재’ ‘귀재’ ‘달인’의 수식이 붙었던 수많은 이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인지조차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 5일 이천수 선수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년 넘게 축구공과 함께 했던 그가 이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제2의 축구인생을 살겠다고 합니다. 만 34세,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준은 아닙니다. 조금 더 버텨볼 법도 하지만, 그는 홀연히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재능만으로는 ‘박지성보다 위’란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부터 그에게 거는 기대는 자못 거대했습니다. 그가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와 페예노르트(네덜란드)에 몸담고 있을 때 대부분 국내 언론사들은 그가 곧 빅클럽에 진출할 거란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2005년 K리그로 복귀(울산 현대)했을 때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해에 실제로 팀은 우승을 했고 이천수는 ‘혼자서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말이 과하지 않을 만큼의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은퇴를 선언한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재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부평고 시절부터 ‘세기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2000년 올림픽대표팀에선 그 가치를 여실히 증명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둔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한국 4대1 승리)에서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터뜨린 선제골은 아직까지 기자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독일 월드컵에서 원정 첫 승을 안긴 프리킥 골은 해외에서도 극찬한 명장면이었습니다.

이렇듯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인 그를 왜 ‘풍운아’라 부르게 됐을까요? 그가 이적한 팀의 숫자를 보면 그 이유가 조금은 보입니다. 이천수는 2002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후 레알 소시에다드, 누만시아, 울산 현대, 페예노르트, 수원 삼성, 전남 드래곤즈, 알 나스르, 오미야 아르디자 등을 숱하게 거쳐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죠. 그의 재능을 감안했을 때 다소 의아한 커리어입니다.

그는 예기치 못한 돌출행동이 심심찮게 나오는, 그리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톡톡 튀는 언행과 행동은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때론 정도를 넘기는 과한 행동이 스스로를 갉아먹었습니다.

팀 분위기를 헤집어 임의탈퇴 처분을 받은 것에서부터 경기 중 ‘주먹감자’를 내밀어 출전 정지 징계를 받기도 하고, 이면계약으로 팀과 에이전트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2년 전엔 술자리에서 싸움을 벌여 물의를 빚기도 했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가치는 점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능력 외적으로’ 말이죠.

‘파란만장’이란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선수입니다. 이제는 듬직한 맏형의 모습으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의 고향, 인천에서 이제는 ‘안식’을 찾는 ‘2002년 마지막 별’의 모습에서 진한 아쉬움과 섭섭함이 묻어나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dani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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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니엘 기자
dani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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