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베트남 처녀, 한국 아지매 되다

스무 살 베트남 처녀, 한국 아지매 되다

기사승인 2016-04-28 11:39:55
"스무 살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와 13년 째 경북 구미에서 살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다문화가정의 지원군 역할을 해내고 있는 도티 빛 융씨. <사진=김희정 기자>"

[쿠키뉴스 구미=김희정 기자] 2003년 꽃다운 나이 스무 살 고향 베트남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돈을 벌고자 택한 한국행이었지만 그녀에게 한국은 새로운 삶을 선사해준 선물 같은 곳이다.


한국살이 13년차인 도티 빛 융(33)씨는 “4남 4녀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부모님의 짐을 덜기 위해 오빠 넷만 대학에 진학하고 여자형제들은 취업해 돈을 벌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진학과 교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학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한국회사(동국방직)에 들어갔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베트남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1년 10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어요.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비로소 2003년 10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베트남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교사가 되겠다는 그녀의 야심찬 계획은 2005년 만난 한국 남자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는 요리도 못하고 빨래도 못한다”는 그녀의 말에 “요리도 빨래도 다 내가 하겠다”는 프러포즈에 넘어가 2006년 결혼 후 지금까지 경상북도 구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었지만 처음부터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한국 음식을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녀는 시부모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대접하기도 어려웠고 충분히 마음을 전할 정도로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서로 오해하고 서운해 하는 일도 있다.

베트남의 친정 부모도 한국의 시부모도 결혼을 마땅찮게 여겼다. 다만 시어머니는 싹싹한 막내며느리 도티 빛 융씨를 좋아했다. 그녀는 자주 봐야 정도 붙는다고 생각해 결혼 후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순대와 떡, 어묵을 싸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갔다.


그녀의 정성에 결국 시아버지도 며느리에게 마음을 내어 줬다. 베트남의 친정 부모도 남편의 오랜 설득 끝에 한국 남자를 사위로 맞아들였다.

◇ 결혼이주여성의 멘토로 활약
결혼 1년 후인 2007년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임신과 출산은 개인적으로도 특별하고도 소중한 경험이지만 그녀 삶에 전환점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됐다.

“여전히 한국생활에 서툴렀던 제게 임신은 기쁜 일이면서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혼자 병원에 가는 것도, 내 몸의 변화를 누구와 의논하지 못하고 견뎌내는 것도, 출산을 친정식구 없이 경험하는 것도, 출산 후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없었죠.”

“시댁식구들과 남편이 잘 챙겨줬지만 출산을 하는 그 순간만큼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절실히 보고 싶었어요.”

그 때 그녀는 ‘후배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내가 친정식구가 돼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녀는 “임신과 출산 뿐 아니라 낯선 나라에서 겪는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교사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그녀의 꿈이 바뀐 것이다.


이후 그녀는 2009년부터 구미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베트남어 통번역지원사와 상담사로 근무하게 됐다. 결혼생활에서 그녀가 겪은 어려움을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은 겪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한국외대가 주관하는 통번역능력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경북을 대표하는 베트남 통번역사가 됐다. 베트남과 관련된 정부와 지자체 업무에 통역사로 자주 참여했고, 베트남에서 온 정부 인사들도 그녀를 가장 먼저 찾곤 했다.

또 다문화가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대구대학교, 대구교육대학교, 시군 교육지원청 등에서 강의를 하고 지역의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학교에서 다문화이해교육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구미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의 통번역과 상담을 통해 국제결혼가정에서는 단순한 언어와 문화차이 외에도 고부갈등, 경제문제, 가정폭력, 성폭력 등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법과 정책을 활용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에 그녀는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잠시 접어뒀던 대학 진학의 꿈을 다시 펼치기로 했다. 구미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진학해 학위를 취득한 것이다.

주부, 엄마, 직장인, 대학생 네 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소화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주변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그녀는 “ ‘도티 빛 융을 보고 결혼이주여성들이 새로움 꿈을 꾼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힘든 것도 모두 잊고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2012년 8월에는 구미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떠나 김천의료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건강검진이나 치료를 받으러 올 때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그녀는 외국인 주민의 지역사회 정착지원 및 사회통합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제6회 세계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안전행정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병원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의 대다수가 정보가 부족해 실비보험조차 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그녀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도움을 주고 싶어 결혼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설계사에 도전했고, 2014년 8월부터 보험설계사로 활동하고 있다.

비록 정식 학교는 아니지만 그녀는 평생의 꿈이던 교사의 꿈도 한국에서 이뤘다. 2013년 주한 베트남 대사관의 도움으로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2세들에게 베트남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주말학교 ‘모두’를 설립하고, 2세들을 직접 가르쳤다.

2014년부터는 여성가족부와 경북도,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20여명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매주 토요일마다 2시간씩 가르쳤다. 올해는 다음 달부터 구미 시골마을의 다문화자녀들을 직접 찾아가 교육할 예정이다.


◇ 다문화가족은 대한민국의 인재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워킹맘이기도 하다. 아들의 교육은 학교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가정에서의 교육과 ‘방과후 수업’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태권도 학원을 제외하면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킨 적도 없다. 다만 베트남어를 잘할 수 있도록 각별히 교육시킨다. 이중언어 능력이 다문화가정 자녀에게는 큰 경쟁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집에선 아이와 베트남어로 말해요. 베트남어로 된 동화책이나 신문을 읽어주기도 하죠. 베트남어는 아이가 성장했을 때 경쟁력이 될 수도 있고, 이중언어가 가능하다는 자신감도 키워주거든요. 모국어를 가르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녀는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결혼하고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스무 살 베트남 처녀가 서른 세 살의 한국 아줌마가 된 것이다.

그녀는 “비록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많이 서툴지만 저는 분명 한국 국적을 취득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며 “대한민국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형편이 딱해서 보살펴주고 지원해줘야 하는 사람이나 대한민국 국민의 보조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을 이중언어 강사로 양성해 학교 방과후 교실과 연계한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고, 새마을세계화사업 등 정부나 지자체의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추진 시 수원국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역량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결혼이주여성들을 외국인 근로자가 근무하는 기업에 근로자 관리와 지원을 위한 중간 간부로 육성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이중언어 구사가 가능한 다문화가정의 2세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이중언어 교육과 한국식 진로 및 품성교육이 함께 이뤄진다면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지금 대한민국은 다문화사회로 점차 변모하고 있다”면서 “더 이상 결혼이주여성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같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차가운 말이나 동정의 시선이 아닌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shine@kuki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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