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염병, 이쁘면 이쁘다고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사람 당황스럽게스리.’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 초반 숙희(김태리)의 대사는 처음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숙희의 감정을 방증하며 동시에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당기는 첫 장치다. 물론 그 대사를 뒷받침하는 것은 김민희다. 우리는 가끔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배역을 다른 배우가 했으면 어떨까?’하고 상상해 본다. 그러나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약간 미쳤고, 많이 ‘나쁜 년’인 히데코의 대체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아가씨’의 개봉을 앞두고 팔판동에서 만난 김민희는 그 모든 대단함을 “이야기가 가진 힘이 컸다”고 축약했다.
“극적인 요소들이 많아 재미있어 보였어요. 제가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연기라는 것도 시나리오 선택의 요소였죠. 그저 최선을 다 해서 히데코를 저답게 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아가씨’를 찍을 때의 제 바람이었어요.” 만족도를 물어봤지만 김민희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되물어왔다. “관객이 50%라고 하면 제가 딱 그만큼 연기한 거겠죠. 스스로를 볼 때 부족한 점이 분명 제 눈에는 보이지만, 그걸 알려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그 부분을 말한다면 다들 그 부분만 집중해서 볼 테니까요.”
연예계 생활만 17년차다.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고,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버리는 단호함은 히데코를 닮았다. 나무에 목을 매달아 놓고도 심드렁하게 “숙희야, 나는 네가 더 걱정돼애.”하고 느릿느릿 말하는 히데코를 보고 웃지 않은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두 여자가 가장 처연해지는 장면인데도 웃음이 터지는 아이러니함은 오로지 김민희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김민희는 1부부터 3부까지 휙휙 바뀌는 인물들의 심리와 시점, 마구 날뛰는 감정 속에서 가장 무거운 추로 존재한다.
“저는 영화의 모든 장면과 감정이 히데코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히데코가 마지막에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이거든요. 평생을 사육당해 온 여자가 진짜 사랑에 빠졌을 때 낼 수 있는 용기.” 김민희가 연기한 사랑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요동치는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고,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뒤를 돌아봤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커다란 사랑이다. “처음에 숙희를 봤을 때 느낀 호기심, 골탕 먹이고 싶은 엉뚱한 감정, 미움, 사랑스러움, 귀여움 같은 것들이 점점 쌓이는 거예요. 이모부에게 길러지면서도 좋은 감정은 하나도 못 배운 여자가 그런 감정들을 차곡차곡 모아나가면서 어느 순간 그 복잡한 것들로 이뤄진 사랑을 깨달은 거죠.”
그렇게 쌓인 사랑을 먼저 꺼내는 것도 히데코다. “발을 주무르는 숙희를 내려다보면서 쌓인 감정을 확인해 보는 거죠. ‘이 아이도 나와 같은 감정일까?’하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확인하다가, 배신감이 드는 거죠. 정말 내가 결혼했으면 좋겠어? 하고.” 배우의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는 시나리오였기에 ‘수위 협의 불가’라는 문구에도 두려움은 없었다. 크랭크인 전부터 화제가 된 노출 수위는 김민희에게 그리 거슬리는 요소가 아니었다. 영화의 뚜껑을 막상 열어보니 김민희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그 대단하다던 베드신은 그저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히데코의 사랑을 관객들도 차근차근 따라간다면, 베드신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실 거예요. 더 재미있는 다른 부분들을 많이 즐기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는 벌판을 달려 나가는 장면을 꼽았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한 줄의 내레이션은 김민희가 느낀 통쾌함을 대변한다. onbge@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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