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류덕중 대정교회 담임목사
[쿠키제주 칼럼] 정낭을 아십니까?
정낭은 너와 나, 우리가 되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대문이 따로 없습니다. 세 개의 긴 막대기를 걸쳐 놓을 뿐입니다. 이를 정남·정살·정술·징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나타내는 도구이자, 말이나 소의 출입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정낭 3개가 정주목에 다 걸쳐 있으면 주인이 먼 곳에 출타 중이라는 표시입니다. 다 내려져 있으면 주인이 집 안에 있다는 표시이고, 2개가 걸쳐지고 1개가 내려지면 주인이 조금 먼 곳에, 1개가 걸쳐지고 2개가 내려 있으면 가까운 곳에 볼 일 보러 갔다는 표시입니다. 정낭을 가지고 자기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정낭 3개가 다 걸쳐 있을 때는 주인이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는 것이므로 동네사람들이 서로 주인 대신 소나 돼지를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민속학자 진성기는 정낭을 ‘온 도민의 신의와 정직과 순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평화경(平和境)의 상징’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정낭을 통해서 항상 소통했습니다. 지금은 멀리 있기에 당신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잠시 다녀 올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집에 있으니 언제든 오세요….
제주는 그렇게 항상 ‘우리’였습니다. 나를 항상 우리 안에 담았습니다. 나를 우리 안에서 만들었습니다. 내가 있는 것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나서는 것도 우리와 함께였습니다. 내가 멀리 갈 때에 우리도 함께 멀리 가줬습니다. 정낭은 오늘도 우리가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낭이 사라지고 그 곳에 대문이 세워지면서 지금 우리는 다시 ‘나’ 혼자가 되어갑니다. 이 때에 내 마음의 정낭을 다 내려서 걸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