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의 귀를 막고 눈을 멀게 만드는 일은 간단하다. 주변 사람들이 속이려는 사람에게 사실과 다른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실제 발생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접근을 차단시키면 된다.
최근 이같은 일이 금융권에 발생해 씁쓸함을 남긴다.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사잇돌 대출’ 운영에 관한 사항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5일 서울보증보험과 연계해 국민, 기업, 농협, 수협, 신한, 우리, 전북, 제주, KEB하나 등 9개 은행에서 4~7등급 중·저 신용자를 주요 대상으로 중금리 대출을 출시했다. 지난 20일까지 출시 2주 동안 하루 평균 264건 27억원, 총 3163명에게 323억8000만원이 지원됐다. 1인당 대출 금액은 1000만원 정도다.
임종룡 위원장도 지난 21일 사잇돌 대출 운용 상황을 확인 점검하기 위해 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NH농협은행 광화문 지점을 찾았다. 농협에서 준비한 전용 창구가 마련돼 있었고 휴대폰 매장을 운영한다는 대출 신청자도 준비돼 있었다. 모든 것이 그럴 듯하게 보였다.
이 자리에서 임종룡 위원장은 금융위원회에서 집계한 2주간 실적 자료를 언급하며 사잇돌 대출이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하반기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이 사잇돌 대출 상품을 출시하면 1조원 규모의 중금리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는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경섭 농협은행장, 최종구 SGI서울보증 사장 등 보조자들이 임종룡 위원장을 대상으로 그럴듯하게 ‘쇼’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임종룡 위원장이 찾은 농협 광화문 지점 근처에는 국민, 우리, 기업 은행 등이 주요 은행 지점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전용창구를 설치한 곳은 임 위원장이 찾은 농협뿐이다.
또한 사잇돌 대출에 관한 홍보물(브로슈어)을 배치해 둔 곳은 국민과 농협뿐이다. 광화문 농협지점의 사잇돌 대출 전용창구는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임종룡 위원장을 위해 마련된 VIP창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금융위원회에서 조금 멀어질수록 사잇돌 대출에 대한 은행의 인식은 더욱 떨어진다. 여의도에 위치한 대부분의 시중은행에서는 사잇돌 대출 전용창구 및 상품을 소개하는 브로슈어도 없다. 뿐만 아니라 사잇돌 대출이 출시 됐다는 사실을 아는 직원도 드물다.
서울을 벗어난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 일부 지방 지점에서는 서민을 위한 중금리 상품이라는 정부 홍보 문구만 믿고 은행을 찾았다가는 제 2금융권으로 가라는 권유를 받기 십상이다.
최근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K씨(44세)는 최근 지역 A은행을 찾아 사잇돌 대출을 신청했다. A은행은 K씨가 주택담보 대출뿐 아니라 세금, 카드 사용료 등을 납부하는 주거래 은행이다. K씨는 A가 주거래 은행이고 신용도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무난히 사잇돌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A은행과 연계된 캐피탈과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것을 권유받았다. 기존 대출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K씨는 은행의 문턱이 다시 한 번 높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에 B은행을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서울보증의 보증서를 발급받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금융위 관계자에게 알리자 “은행의 문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은행별 문턱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이와 관련 A은행은 사잇돌 대출 진행할지, 제 2금융권 연계 상품을 권유할지를 자체 신용평가 모형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A은행의 신용평가 모형을 통과하지 못하면 보증서 발급 소득 및 신용 조건 등을 갖췄더라도 사잇돌 대출을 신청할 수 없는 겪이다.
이에 반해 금융위에서 밝힌 일반은행의 사잇돌 대출 신청 절차는 A은행과는 조금 다르다. 자격요건을 갖춘 소비자가 은행에 사잇돌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은 서울보증에 평가를 의뢰한다. 이후 보증서가 발급되면 이를 가지고 은행별 평가모형에 따라 제심사하는 구조다. 보증서 대출의 경우 개별 신용대출 한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보증에서 보증서를 발급하면 은행은 대게 대출을 해준다. 다만 대출 한도는 조금 줄어 들 수 있다.
이같은 은행별 대출 관행에 차이에 대해 은행권 한 관계자는 “사잇돌 대출과 같은 정책성 상품이라도 저신용자들에게 대출되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대출을 해주는 창구 직원이 부실이 발생했을 경우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며 “은행직원 입장에서는 6,7 등급과 경계에 있는 사람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대출을 해줄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전용창구는 임종룡 위원장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은행직원도 모르는 사잇돌 대출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금융 정책 당국 수장인 금융위원장의 눈과 귀를 멀게 하기 위해서 시간을 쏟고 각본을 꾸미기 전에, 정책당국자들이나 은행 경영진들이 서민들의 금리 부담을 완화해 주는 중금리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할 때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