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부지 선정이 지역 갈등 비화 조짐으로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습니다. 성주 북단의 한 골프장이 새 부지로 물망 위에 오르자 전자파 피해의 당사자가 된 김천시 주민들이 ‘원정 시위’까지 나선 상황에서 국방부는 지역갈등 조율의 거대한 벽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이 가운데 야당에서 강력히 재검토를 요구한 ‘한반도 사드배치 적절성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 상태입니다.
앞서 경북 성주군은 투쟁위를 결성, 사드배치 결사반대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반대시위가 격화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구·경북(TK) 초선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3후보지’의 가능성을 언급했죠. 여기서 제3후보지란 다른 시·군·구를 찾는다는 게 아닙니다. 성주 내에서 제3의 장소를 모색하는 개념입니다.
투쟁위는 최초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했지만, 이후 다수 위원들은 군 내 제3후보지 모색으로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김항곤 경북 성주군수는 오늘(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군 내 여론조사에서 대다수 군민들이 꼭 배치를 해야 한다면 제3의 장소를 희망하고 있다. 국방부는 성산포대를 제외한 제3의 적합한 장소를 사드배치 지역으로 결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입장을 전달했죠.
이를 반영하듯 제3후보지 관련 투쟁위원 33명의 거수표결에서도 찬성(23명)이 기권과 반대(10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습니다. 한민구 국방장관 또한 “(공식적인) 지역의견으로 건의하면 (제3후보지를) 검토해보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놓았던 터라 제3후보지 모색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이러한 투쟁위의 입장 선회는 인구가 밀집한 성산포대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만은 막겠다는 의지표현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면서 나온 곳이 성주 초전면 소재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인데요. 성주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은 전자파 피해에 있어서 성주 주민들에게 꽤 자유로운 곳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매우 지엽적입니다. 사드가 전방 레이더인 탓에 북쪽을 향한 전자파 피해는 고스란히 김천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부지만 성주일 뿐 레이더의 직접적인 영향권은 김천이 되는 거죠.
롯데골프장 반경 5.5km에는 김천시 남면과 농소면 일대 지역주민 2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1만4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김천혁신도시는 골프장에서 불과 7km 밖에 안 떨어져 있죠.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김천민주시민단체협의회와 농소면·율곡동 사드반대대책위원회 등은 곧장 ‘촛불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20일에는 김천 강변공원 공연장에서 사드 반대 촛불문화제를 열고, 골프장 사드 배치에 대한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했습니다. 700여명이 참석한 집회에서 김천시민들은 “김천과 인접한 곳을 제3후보지로 정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투쟁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성주 내 제3후보지 선정에 대한 의견은 투쟁위 내부적으로도 갈립니다. 소수 투쟁위 위원과 주민들로 구성된 반대파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적절성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 성주군수가 제3후보지 선정을 국방부에 공식 요청한 직후 투쟁위 배은하 대변인은 “주민의 뜻과 다른 군수의 기자회견은 무효”라며 “우리는 끝까지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1일 투쟁위 촛불집회에서 주민대표로 새롭게 선발된 김충환 씨 또한 “투쟁위의 입장은 항상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였다”면서 제3후보지 타협은 없을 거라고 못 박았습니다.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게 적절한지 여부는 꽤 오래된 논란거리입니다. 김광진 전 의원은 국회 질의와 칼럼 등을 통해 사드가 한반도에 부적절한 군사시설임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는 사드가 대륙간 장거리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레이더인데, 아직 실전배치 된 적이 없는데다가 제작사조차 실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핵을 한반도에서 사용할 경우, 이는 미사일 형태가 아닌 수직 투하하는 형태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실제 핵미사일 방어에도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죠.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은 22일 국회 비대위 회의에서 “국방부 장관은 전국에 땅 보러 다니는 부동산업자가 아니다”면서 “후보지 돌려막기를 할 게 아니라 사드배치 정책결정 과정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렇듯 사드의 한반도 배치 적절성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지만 국방부는 상당히 단호한 결론을 내 버렸습니다. 어떠한 합의 프로세스 없이 성주가 부지로 선정된 것 또한 의아함을 낳았죠.
경북지역 최대 화두가 된 사드 부지선정이 “우리 지역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님비(NIMBY) 분쟁으로 번지는 건 그 지역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길이 아닙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적절성에서부터 부지 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은 보다 다각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주민과 국민, 군사당국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경청과 토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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