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진] 더 이상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종합)

[경주 지진] 더 이상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종합)

고스란히 드러난 ‘안전 불감증’의 민낯

기사승인 2016-09-13 18:51:09

지난 12일 오후 7시44분께 경주 남남서쪽 9km에서 5.1 규모의 전진이 발생한 데 이어 50여 분 뒤인 오후 8시32분 경주 남남서쪽 8km에서 5.8 규모의 본진이 발생했다. 두 지진 진앙 사이 거리는 직선으로 1.4km다. 이번 지진으로 전국에 부상자 8명이 발생했으며, 재산피해 신고는 253건으로 집계됐다. 

제 기능 상실한 국민안전처, 재난 대응 시스템 미흡

큰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국민안전처가 부실 대응으로 불안을 조장해 도마 위에 올랐다.

안전처는 진앙에서 반경 120㎞ 지역에 해당하는 부산, 대구, 울산, 충북, 전북, 경북, 경남 등의 지자체 주민들에게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문자는 지진 발생 9분 뒤에 발송됐다.

오후 8시39분에는 규모 5.8의 본진이 일었다. 전국에서 느껴질만큼 강한 진동이 계속됐지만 서울, 경기, 인천 등지의 국민들은 재난문자를 받지 못했다.

홈페이지도 문제였다. 

첫 번째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접속이 폭주, 안전처 홈페이지는 결국 먹통이 됐다. 다운된 홈페이지는 3시간이 지나도 복구되지 않았다.

안전처는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스템 점검 작업으로 인하여 현재 웹서비스가 중단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공지만 띄울 뿐이었다.

답답한 국민들이 SNS를 이용해 상황을 파악할 동안 안전처 페이스북에도 별다른 정보는 게재되지 않았다.

안전처는 “접속자 폭주에 따른 접속 불가현상”이라고 설명했으나 안전관리 소홀 비판은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3일 “최대규모 5가 넘는 2차례의 지진에도 안전처 홈페이지는 지진 발생 후 3시간동안 먹통이었다”며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쳤다. 세월호 이후 변한 것은 국민이지 정부 시스템은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역시 “국민이 다치고 상한 뒤에 해명, 변명하는 건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며 “이런 저런 이유, 핑계는 안 통한다. 국민으로부터 박수받는 안전처가 돼야지 국회에 와서 변명하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고 질책했다. 

안전처는 지난 7월 울산 동구 동쪽 52㎞ 해역에서 규모 5.0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도 약 17분이 지나고서야 늑장 문자를 보내 논란이 일었다.

“불국사·통도사 기와 깨지고 다보탑 난간석 분리돼”… 지진 대비 문화재 보호대책 시급

이번 지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의 기와가 깨지는 등 문화재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사례가 가장 많이 보고된 곳은 지진 진앙이었던 경주다.

13일 경주시청에 따르면 불국사 대웅전 일부 전각의 기와가 2~3장 파손됐으며, 경내에 위치한 다보탑 상륜부 난간석 일부가 탑신에서 분리됐다. 

신라 시대 고분 오릉의 재실인 숭덕전 내부 담장도 30m가량 주저앉았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주 향교 내 명륜당 벽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석굴암에는 별다른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진입로에 낙석이 떨어져 12일 긴급 복구됐다. 

국보인 성덕대왕신종과 고선사지 3층 석탑, 신라시대 금관 등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관계자는 “지진 발생 시 크게 흔들림을 느꼈으나, 소장된 물품에 대한 피해는 보고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전각 기와 일부도 파손됐다.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보관된 한국의 3대 사찰 중 하나다.  

양산시청 관계자는 “통도사 내 전각 기와의 뒤틀림 현상이 보고돼 현재 직원들을 현장으로 파견했다”며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에서도 일부 문화재 피해가 보고됐다.

울산광역시 문화재 제17호 석계서원 일부 건물의 기와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고, 울주군 두동면에 위치한 ‘박제상 유적지’ 담장의 기와도 일부 파손됐다. 다만,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청은 추가적인 피해 파악에 주력 중이다.

문화재청 대변인실 주충효 주무관은 “추가적인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관련 대책은 피해 상황을 집계한 뒤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대학교 문화재보존과학과 이찬희 교수는 “지진에 대비해 문화재를 보강할 대책이 필요하지만, 원형을 훼손시킬 수 있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보강을 위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전 18기 밀집된 동해안… 전문가 “한수원, 지나치게 낙관적”

국내 최대 규모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하자 원전 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지진 발생 후인 12일 오후 11시56분부터 월성 원전 1~4호기를 수동 정지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지진의 영향으로 원자력 발전소가 중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원전은 지진 응답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계측값이 0.1g(g은 중력 가속도) 이상이 되면 수동으로 가동을 중단하도록 돼있다.

한국의 동해안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대로 알려져 있다. 동해안에는 월성 1~4호기, 신월성 1~2호기, 고리 1~4호기, 신고리 1~2호기, 한울 1~6호기, 총 18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경주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도 있다.

이에 원전 인근 주민들은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한수원 측은 “내진 설계가 충분히 돼 있어서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월성, 신월성 원전은 원자로에서 수직으로 지하 10km의 지점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시 각각 지진 규모 6.5와 7.0 까지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수원은 추가 지진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원전과 방폐장의 안전점검을 하고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전문가를 파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단체 측에서는 지진 진행경과를 봤을 때 안심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전날 성명을 발표하고 “원전 주변은 한반도에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이라며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 지진(규모 7.3), 지난 7월 울산 앞바다 지진(규모 5.0)에 이어 이번엔 내륙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고 경고했다.

활성 단층은 현재 살아 움직이는 단층을 말한다. 학계에서는 활성 단층이 지진의 진앙이 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환경운동연합은 “지질학 논문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는 7.45±0.04 이다.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며 “오래된 원전일수록 내진 설계를 신뢰하기 어렵다.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한 전면적인 안전 점검 뿐 아니라 내진 설계가 상향 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도 앞으로 규모 5.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한수원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창환 전북대학교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규모 7.0 이상의 지진은 주기가 몇 백 년인데 한반도에는 지난 1600년대 중반 한차례 발생했다”며 “400년이 지나 주기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선 지진 계측이 가능해진 1978년 이래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9번 있었고, 그 중 3번이 올해 발생했다”며 “큰 규모의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경북 소재 고교 “지진 한 번 더 나면 보내줄게”

지진 발생 후 경북 소재 고교에서 야자를 하던 학생들이 SNS상에 “학교에서 대피를 못 하게 했다”며 글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진 당시 야자를 감독하던 교사들은 “지진 한 번 더 나면 집에 보내주겠다” “금방 꺼지는 지진 같으니 진정하고 야자해라” “무단 외출 시 벌점 10점이다” “잠깐 여진이 있었으나 공부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마저 자습해라” “울면서 애들 공부 방해할 거라면 집에 가라” “너희가 공부하다가 죽으면 뉴스에 좋게 나갈 거다. 만약 죽는다면 내가 공동묘지에 잘 묻어주겠다” 등의 말을 하며 야자를 강행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 발생에도 학생들의 안전을 챙기지 않는 모습에 네티즌들은 안전불감증의 민낯이라며 비난 여론을 쏟아냈다.

한 네티즌은 댓글로 “교장 재량으로 야자를 안 했다는 속보를 봤다. 지진이 났으면 야자를 안 하는 게 당연한 거지 기사까지 나올 정도로 특별한 일인가”라며 “지진이 소나기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일개 교사가 ‘금방 꺼지는 지진’이라고 말했는지 황당하다”고 분노했다.

‘지진 전조 현상’ 괴담 또 대두… 시민들 “명확한 해명 달라”

이번 지진소식에 몇 달 전 부산·울산 등을 중심으로 나돌던 ‘지진 전조현상’ 괴담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의 지진인데다가 두 달여 사이 규모5 이상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자 일대 주민들의 불안은 극한에 달했다. 약 일주일 뒤 더 큰 지진이 올 거란 근거 없는 루머까지도 단순 괴담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지난 7월21일 오후 5시경 부산 해운대구 중동과 남구 용호동 등에서 “원인 모를 가스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119, 112, 부산도시가스 등에 다수 접수됐다. 23일엔 울산에서도 가스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20건 이상이 접수됐다.

23일에는 한 네티즌이 SNS를 통해 광안리 백사장에서 수십만 마리의 개미떼가 이동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앞서 가스냄새 파동으로 ‘대지진 괴담’이 부산 전역을 뒤흔들던 터라 개미의 대이동이 지진 전조 현상의 또 다른 징표가 아니냐는 루머가 급속도로 퍼졌다.

당시 개미의 대규모 이동 사진을 올린 이는 “개미가 지진을 피해서 어디론가 가는 게 아닌지…”란 말과 함께 #광안리 해수욕장 #지진 전조 현상 #서울로 가자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 외에도 한 부산 거주자는 SNS를 통해 평소 보이지 않던 심해어가 잡혔다며 인증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부산 거주 네티즌들은 “지진 전조현상이 맞는 것 같다” “안전 불감증은 무서운 재앙을 초래한다” “빨리 다른 지역으로 대피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국민안전처는 의문의 가스냄새는 연료 등 가스에 냄새구별을 위해 주입하는 ‘부취제’로 추정, 공단 등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기상청은 또한 “최근 부산 가스 냄새가 ‘지진 전조현상이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어 알려드린다. 한마디로 ‘지진 전조 현상’이라는 것은 없다. 부산 가스 냄새도 ‘지진’과는 전혀 상관없으니 혼란 없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수영구청의 한 관계자는 개미의 대규모 현상에 대해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장마가 끝나면 백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며 “장마 직후가 개미 번식기인데 이때 개미들이 먹이를 찾아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렇듯 유관기관들의 발표와 과학적 근거 부족 등이 연이어 나오며 당시의 지진 괴담은 루머로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불과 두 달여 만에 부산·울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경주에서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자 괴담은 다시금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산 거주 한 시민은 “당시 국민안전처나 기상청의 발표는 설득력이 없었다. 이들은 명확한 원인 규명보다는 추측성 해명을 통해 지진과의 연관성을 명확히 단절시키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울산 거주민이라는 한 SNS 유저는 “이렇듯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더 큰 지진이 올 수 있다는 경고메시지”라고 평가했다.

한 경주 시민은 “이렇게 지진을 체감하고 나니 지진 전조 현상과 관련된 괴담들을 그저 루머로 흘려들을 수 없다”면서 “믿을 수 있는 얘기를 기상청이든 어디든 빨리 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지진 대피요령 재조명

그간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한반도에 강력한 지진이 연달아 발생하자 지진 대피 요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 지진‧화산 대피요령에 따르면 지진이 발생하면 책상이나 탁자 밑으로 대피하고, 지진이 끝날 때까지 라디오나 TV 방송을 주시해야 한다. 

건물 안에 있을 때는 무거운 물건이 넘어질 염려가 있는 것으로부터 멀리 피한다.

집 안에 있을 때는 가스 밸브와 전원, 수도 밸브를 신속히 잠가 화재 등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물 밖에서는 간판이 떨어지거나 유리창이 깨질 수 있으므로 무조건 달려나가는 행동은 삼간다.

공공장소에서는 출구에 사람들이 몰리면 위험하므로 침착하고 질서 있게 행동해야 한다. 

야외활동을 할 때는 빌딩이나 나무‧유리창‧전신주‧가로등이 없는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지하철 안에 있을 경우 전철 안은 비교적 안전하므로 고정된 물체를 꼭 잡고 차내 방송의 지시에 따른다.

기획취재팀=민수미 이다니엘 정진용 이소연 심유철 이승희 기자

dne@kukinews.com

이다니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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