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북人 경북in] 신라 천년의 혼을 빚는 자부심

[기획-경북人 경북in] 신라 천년의 혼을 빚는 자부심

[기획-경북人 경북in] 9. 김외준 대구경북공예협동조합 이사장

기사승인 2016-11-30 11:55:14

[쿠키뉴스 경주=김희정 기자] 찬란한 신라천년의 기운이 서린 땅 경주. 그중에서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산은 신라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예부터 뛰어난 도공과 석공, 화공 등 문화예술인들이 기거하던 곳이기도 하다.

경주 남산 자락에서 도자기를 굽는 김외준(52·청광요 대표) 작가는 흙과 불에 천년의 숨결을 불어 넣으며 35년간 신라 토기의 재현과 산업화에 힘써왔다.

김 작가의 청광도예(도예연구소)는 남산의 품에 깊숙이 안겨있다. 그가 남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 년 전이다. 청광도예 자리는 원래 조각가 수월 김만술 선생의 작업장이었는데 선생이 세상을 등진 뒤 김 작가가 이곳에서 예술의 맥을 잇고 있다.

 

 

◇ 도자기로 재탄생한 남산의 소나무
청광도예 마당으로 들어서자 도자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정겨운 한옥이 반긴다. 작업실로 걸음을 옮기면 긴 머리를 정갈한 듯 느슨하게 묶고 도자기를 빚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쉼 없이 발로 물레를 차며 손으로 흙을 어루만지는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 반면 눈빛은 흔들림 하나 없다. 그에게서 옛 신라시대 도공(陶工)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돌아가던 물레가 멈추고 그는 작품하나를 가져와 들어보였다. 특허까지 얻어낸 ‘솔피문양도자기’다. 그가 신라도공의 흔적을 따라 남산을 오르내리며 우연히 발견한 소나무 무늬다. ‘솔피문양도자기’의 표면은 나이 든 소나무의 껍질과 꼭 닮아 있다.

“남산에서 문득 소나무의 무늬를 유심히 보게 됐는데, 일정하면서도 자유롭고, 규칙적이면서도 무질서한 무늬가 저를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소나무 껍질의 자연스럽고 투박한 멋을 도자기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영감의 원천인 남산의 소나무 무늬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솔피문양도자기’도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혹자는 이 무늬가 새겨진 다기에 차를 마시면 그윽한 솔 향과 솔바람도 함께 마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 도자기 굽는 일은 하늘의 뜻
그는 경주공고 요업과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도예에 입문했다.

그는 “처음부터 요업과에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면서 “기계에 관심이 많아 전기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2지망이었던 요과 선생님이 1학년인 저에게 3학년보다 낫다며 칭찬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냐. 그 한마디에 물레를 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취했고, 매일을 밤낮없이 작업에만 몰두하며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대학에서도 학생들 중에는 그와 버금가거나 넘어서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남보다 뛰어난 실력에 안주하지 않았다.

“도자기를 알면 알수록 공부에 목이 말랐습니다.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미술로 석사과정을 마친 뒤 재료에 대해 연구하게 됐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욱 깊게 파고들어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한 겁니다.”

그 지치지 않는 열정과 예술가로서의 뚝심이 오늘의 그와 그의 작품을 있게 했다.

그는 1998년 경북공예품경진대회 대상을 시작으로 그해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산업자원부장관상, 2003년 경북공예품경진대회 대상, 2004년 경북도지사 표창, 2010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표창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다.

대구 등지에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어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03년 경상북도 산업디자인전, 2004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2010년 경북 기능경기대회, 2011년 대구 기능경기대회 등 각종 대회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됐다.

2011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의 강사, 계명문화대학교 인테리어제품디자인학과 강사, 2005~2011년 선린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는 등 강의경력도 적지 않다.

남들 하나 만들 때 열 개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고, 하루도 쉬지 않고 작업에 매달리는 그에게 도자기 굽는 일은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과 같다고 했다.

그는 “하늘이 나에게 도자기 만드는 재능을 준 이유는 한사람이라도 더 좋은 도자기에 차를 마시고 한사람이라도 더 좋은 그릇에 밥을 먹는 세상을 만들라는 뜻일 것”이라며 “이 때문에 잠깐이라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 신라도공의 후손과 두 아들의 꿈
그는 작업장 청광요에서 전통 가마에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굽는다. 전통 가마는 100개를 넣으면 100개가 똑같이 나오는 가스 가마나 전기 가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가마는 100개를 넣으면 50개가 같을지 30개가 같을지, 혹은 100개 모두 다르게 나올지 모른다. 불의 세기에 따라, 또 100개 가운데 불을 많이 받거나 적게 받는 지에 따라 다른 작품이 탄생하기에 가마 앞에서 기다리는 도예가 만의 설렘과 즐거움이 있다.

그렇다고 전통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작업의 양이 많을 때는 전통 가마만으로는 기간이나 개수를 맞출 수 없어 온도가 고르게 분포되는 가스 가마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두 아들도 그를 따라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신라도공의 후손인 그들은 오늘도 같은 꿈을 꾸며 흙을 만지고 불을 지펴 도자기를 만들어낸다. 신라도공의 솜씨를 그대로 재현하고 오늘의 기술을 접목해 더욱 발전된 도자기를 빚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도자기가, 또 신라의 도자기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그는 “아들들에게 흙에 지거나 타협한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고, 흙과 온전히 하나가 돼야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늘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는 도예가로서 평생 그가 지켜온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또 작가로서, 스승으로서 바쁜 와중에도 대구경북공예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아 공예인들의 애로사항과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박람회 등을 통해 공예인들의 예술 활동을 장려하고, 공예품의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한편, 도예촌이나 공예촌을 설립해 공예인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펼칠 계획도 갖고 있다. 

신라도공의 후손이자, 신라 천년의 혼을 빚는다는 당당한 자부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자부심의 이면에 신라 토기의 전통과 맥을 이어온 긴 세월과 그의 부단한 노력이 숨겨져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shine@kukinews.com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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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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