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고령=김희정 기자] 경북 고령은 예부터 이름난 도요지(陶窯址·토기나 도자기를 구워내던 가마의 터)였다. 특히 조선시대 성산사부동도요지(星山沙鳧洞陶窯址)는 상감청자와 분청사기의 대정, 대접, 사발 등 전국 324개 가마 중에서 최상의 도자기를 만들어내던 곳이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질 좋은 고령토가 나고, 땔감이 되는 산림이 울창하며 만들어진 제품을 옮기기 편리한 운송로도 갖추고 있어 그야말로 도요지에 있어 최적의 장소였다.
자연스레 뛰어난 도자기술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도자기 고장’ 고령에서 도예명장 혜전 최상중(76) 작가는 고령 도자기와 도자기술의 옛 명성을 지키고 있다.
그는 성산면의 낡은 폐교를 개조해 ‘가야요(伽耶窯)’라는 도예 작업실과 전시관, 체험장 등을 꾸며놓았다. 동네주민들은 지나는 행인이나 관광객을 보면 ‘꼭 저곳을 들렀다 가시라. 예쁜 자기와 그릇이 많다. 우리 지역 자부심’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가야요에 들어서면 수많은 작품들이 저마다 다른 색과 자태를 뽐내며 반긴다. 마치 형형색색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선 맑은 꽃향기가 난다. 올 여름 가야요 마당에 한 아름 피어있던 백일홍 향기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 작가는 도자기에 백일홍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국내 최초로 유약의 일부분인 결정유(結晶釉)를 개발해 각종 국내외 전시회, 대회 등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며 극찬을 받았다.
2012년에는 고령군 도예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도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전통생활자기를 생산하며 40여 년 간 가야토기의 명맥을 잇고 있다.
◆ 화려한 색과 문양의 결정유 도자기
도자기에 결정유 문양이 피어난 것은 옛날부터 있던 기법이지만,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생겼던 터라 지속적인 생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하지만 현재는 가마의 단열재가 발달했고, 첨단 장비를 이용한 정확한 온도 조절, 소지 및 유약의 성분 분석치와 결정학의 발달 등으로 생산이 가능해 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결정유 도자기는 칠보석 원광을 미분쇄 한 것을 주성분으로 한다.
유약의 원료에 원적외선, 회토류 금속원료를 첨가해 고온(1300℃)에서 소성 응축시키는 동안 장시간에 걸쳐 결정을 꽃피운다.
그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며 도자기마다 각기 다른 독창적인 문양과 색이 나온다. 작품 하나하나가 뿜어내는 이미지가 다르다. 사람의 생김생김과 미소가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색과 모양에 따라 결정유록화문병(結晶釉綠花文甁), 결정유금화화로(結晶釉金花火爐), 결정유청화문병(結晶釉靑花文甁) 등으로 이름 붙여진 도자기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흙과 불, 유약이 만들어낸 결정유 도자기는 함부로 따라할 수 없고 쉽게 흉내 낼 수도 없는 그만의 창작물이자, 가치 있는 예술품이다.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결정유 도자기에 새겨진 신비스런 색채와 화려한 문양은 최상의 예술품으로 이름 오르내리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결정유 분야는 비단 예술적인 가치 외에도 도자산업을 비롯해 건축 인테리어, 여행상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여지가 많아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는 “파장이 다른 원적외선으로 인해 변화하며 방사해서 결정을 꽃피우기 때문에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며 “마음에 꼭 차는 작품은 절반도 안 나온다. 그래서 마음고생도 심하다. 칠보석 결정유 도자기는 ‘하늘이 내리신 보석’과 같다”고 말했다.
또 “첨가되는 원적외선은 인체의 모든 세포에 활력을 줘 원기왕성하게 한다. 근육이 뭉치거나 담이 온 곳 등 이상 있는 곳의 빠른 재생을 돕고 항균, 탈취 효과도 있어 생활자기로도 마침맞다”고 덧붙였다. 원적외선 방출을 극대화하는 결정유 도자기는 미적인 요소 뿐 아니라 실용성까지 두루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90년 첫 개인전 이후 1991년 제8회 국제도예창작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해외시장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같은 해 한국공예 대전 특선, 한국현대공예 대전 특선 등을 거머쥐며 도자기와 함께 호흡한 오랜 세월과 그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국제무역박람회에도 출품했으며, 1998년에는 일본 오사카(대판) 시에 상설전시장을 개장했다. 같은 해 광주 세계문화 EXPO 홍보전시관에도 작품을 전시했다.
지금도 도자기 제작에 한창인 그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 중이다. 그는 “신화 속 이야기가 담긴 도벽화(陶壁畵) 작업에 흠뻑 빠져 있다”며 “도자기 벽화는 초벌구이 한 흙 판에 극도로 정밀한 그림을 그려 다시 구워내야 해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결정유 도자기에 구워져 나온 벽화는 또 얼마나 화려하고 아음다울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도자기에 대한 끝없는 그의 열정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 가야요 입구 안내판에 쓰여 진 ‘지극정성(至極精誠) 가야요’라는 문구가 더욱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