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의 커피소통㉔] 믹스커피의 애환(哀歡)

[최우성의 커피소통㉔] 믹스커피의 애환(哀歡)

기사승인 2017-01-20 16:38:04

장 박사는 자타가 인정하는 커피 매니아(Mania)다. 그는 핸드드립기술을 배워 연구실에서 직접 브루잉(Brewing) 커피를 즐긴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유학할 당시부터 커피를 즐겼지만 귀국 후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제대로 커피를 즐기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된 요즘이 정말 행복하다.

장박사가 어느 날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준비된 커피가 믹스커피 밖에 없었다. 장 박사는 거침없이 믹스커피를 타서 마셨다. 같은 대학의 다른 교수가 장 박사를 향해 묻는다. “장 박사님도 믹스커피 드세요? 장 박사님은 안 드시는 줄 알았어요~” 장 박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믹스커피도 맛있어요. 사람들은 제가 믹스커피를 안 마시는 줄 알지만 가끔은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봉지커피라고 불리는 믹스커피 속에는 분말(粉末)화 한 커피가루가 설탕과 크리머와 함께 적당한 비율로 담겨져 있다. 추출된 커피를 분말로 만들지 못했다면 믹스커피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로 커피를 분말로 만드는 기발한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일본계 미국인인 ‘사토리 카토’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그는 1899년에 가루로 만든 차를 만들어 판매했다.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차(茶)를 빠르고 쉽게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이 발명은 그다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의 가정주부들은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가토박사가 1901년에 미국 박람회에서 최초로 물에 녹는 가루커피(Soluble Coffee)를 선보였다. 이 발명품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끓는 물을 커피가루에 부으면 커피 한 잔이 곧바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커피는 커피이긴 한데 맛과 향이 제조과정에서 날아가서 쓴맛만 남은 맛없는 커피였기에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가토의 실험은 인스턴트커피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06년에 조지 워싱턴이라는 이름의 약사가 가루커피를 상업화 하고 이를 시장에 내놓았다. 미국 대통령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인 그가 만든 이 커피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쟁이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전쟁터에서는 보다 빨리,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 커피가 필요했는데, 이 인스턴트 커피가 바로 거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병사들에게 커피를 막대기, 알약, 조그만 캡슐 형태로 만들어 지급하였는데, 전쟁터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미국의 인스턴트커피시장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네슬레의 네스카페였다. 네슬레가 만든 이 커피에는 맥아(麥芽)와 다른 첨가물들이 들어 있어서 다른 분말커피와는 다르게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스턴트커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우리나라의 동서식품이다. 동서식품은 1976년에 분말커피와 설탕, 그리고 크리머를 잘 배합한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라는 커피를 세계최초로 개발했다. 이 커피는 한국인의 입 맛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입맛을 훔쳤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미국 본토에까지도 맥심믹스커피가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인들도 맥심의 맛에 빠졌고, 최근에는 중국 상인들에 의하여 북한에도 맥심이 들어갔는데 그 인기가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믹스커피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사람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믹스커피 보다는 에스프레소와 블루잉 커피 쪽으로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토박사가 분말커피를 만들어 새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동서식품이 분말커피와 설탕, 크리머를 황금비율로 배합한 믹스커피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 커피업계도 새로운 컬래버레이션 [collaboration] 고민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이다니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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