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소연 기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28일 당의 대선주자로 확정됐다. 유 의원은 기존 보수 정치인과 다른 노선을 걸어왔다. ‘보수 중 가장 왼쪽’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따뜻한 보수’ ‘합리적 보수’를 주창해온 그는 국가 개혁을 외치며 대권 도전에 나섰다.
▲ 재벌개혁 주장한 엘리트 경제학자
유 의원은 정치권의 대표적 ‘경제통’으로 꼽힌다. 지난 1982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87년부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KDI 시절, 유 의원은 재벌개혁과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을 주요 담론으로 삼았다. 지난 93년에는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금지해야 한다”며 계열사끼리 출자할 수 있는 한도액을 축소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제안했다. 90년대 초반, 재벌은 한국 경제성장의 주역이자 불가침적 존재로 묘사되고는 했다. 유 의원은 당시 사회 분위기와는 다른 자신만의 소신을 펼쳤다. ‘효율성, 민주주의, 형평성, 그리고 재벌개혁’ ‘재벌해체 논쟁 이후 재벌정책의 진로’ ‘기업지배구조의 정책과제’ 등 관련 논문도 꾸준히 작성했다.
▲ 이회창 참모에서 박근혜 비서실장까지
지난 2000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발을 담갔다. 학자의 삶을 살아왔으나 정치권과 아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인 고(故) 유수호 전 의원은 대구 지역에서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이후 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캠프에서 참모로 활동하며 경제 정책개발·연설문 등을 담당, 능력을 발휘했다.
유 의원이 ‘2세 정치인’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것은 지난 2004년의 일이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듬해인 2005년부터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내정, 같은 해 10월까지 9개월간 박 전 대통령의 보좌를 맡았다. 지난 2007년에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친박근혜)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여당 내 야당으로 활동,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친박계였던 김무성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 불가론’을 비판하며 탈박(탈박근혜)할 때도, 유 의원은 곁을 지켰다.
▲ 탈박으로 전향…“청와대 얼라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개국공신’ 명단에는 유 의원이 포함되지 못했다. 대선 직전, 유 의원은 새누리당 당명 변경 등으로 박 전 대통령과 충돌을 빚으며 사이가 멀어졌다. 당시 유 의원은 당명 개정과 정책에서 ‘보수’를 빼는 작업에 적극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탈박으로 전향, 박 전 대통령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각을 세웠다. 지난 2014년에는 국가 외교·안보라인의 무능함을 지적하며 “외교부 북미 1과·2과에서 대통령의 간담회 관련 자료를 모른다고 하더라. 외교부 누가 (일 처리를) 하는 거냐? ‘청와대 얼라들(어린이들)’이 하는 거냐?”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청와대 얼라들이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듬해,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유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 연설에서 “134조5000억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2000억원”이라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유 의원에 연설을 두고 친박계에서는 침묵이, 야당에서는 찬사가 이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후 3개월 후, 유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와 갈등을 벌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은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했다.
▲ 두 번의 탈당…무소속 출마의 서러움에서 대선주자로 발돋움
박 전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지목된 유 의원은 지난해 총선 공천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새누리당은 유 의원의 지역구에 대한 공천을 후보 등록 마감시한 직전까지 발표하지 않았다. 출마조차 못 할 가능성이 점쳐졌다. 유 의원은 결국 후보 등록 마감 직전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대구 동구을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 의원은 75.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복당 의사를 밝혔으나 허용 여부를 두고 친박과 비박 간의 논쟁이 벌어졌다. 같은 해 6월 새누리당은 유 의원을 포함,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4명의 복당을 허용하며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유 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당의 개혁, 화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복당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며 상황은 반전됐다. 유 의원 등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의원들은 비상시국위원회(비상시국위)를 결성했다. 유 의원은 김무성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비상시국위는 당에 유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주류였던 친박계의 거부로 무산됐다. 장고를 거듭하던 비상시국위 소속 의원들은 지난해 12월27일 새누리당을 탈당, 바른정당(당시 가칭 개혁보수신당)을 창당했다. 유 의원의 경우, 복당한 지 약 6개월 만의 결정이었다.
유 의원의 두 번째 탈당은 초라했던 첫 번째 탈당과는 달랐다. 사당(私黨) 논란이 일 정도로 당내에서 입지를 유지했고, 30명의 원내 의원이 함께였다. 그는 지난 1월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바른정당 후보로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해 복지·노동·교육·주택·보육·의료 분야에서 과감한 개혁을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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