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엑스레이(X-ray)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의사가 있다. 바로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양보다는 내부 구조에 있다는 그는 엑스레이를 도구삼아 일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흔히 알려져 있듯 엑스레이는 사물의 내부를 비춰볼 수 있어 환자들의 흉부, 복부 등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진단검사기기다. 주로 환자의 의료정보를 담아온 흑백사진이 정 교수를 통해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잠결에 TV방송에서 접한 기형도 시인의 시 ‘입 속의 검은 잎’을 엑스레이 사진으로 작품화한 것을 계기로 10여년째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미 파리, 모스크바 등 해외초청전시를 비롯해 국내외 다수 전시회를 연 전적도 있다.
정 교수는 엑스레이 아트(X-ray Art)에 대해 “장미는 겉모습도 아름답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내부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것이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구조가 아름다워야만 오래 간다. 반면 구조가 허술하면 금방 무너져버린다. 이는 만물의 이치와 맞닿아있다”고 말했다.
작품의 주된 모델은 꽃과 사람이다. 정 교수는 “작품 소재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찾는다. 특히 꽃과 인체 밸런스에 관심이 많다”며 “예컨대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의 동작, 와인을 마시는 순간 등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것들을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시각화해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내에서 그는 별난 의사로 통한다. 엑스레이 아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린이들에게 별을 보여주는 의사로 유명했다. 당시 밤하늘을 관측하는 것이 취미였던 정 교수의 주위에는 항상 병원 아이들이 모여들곤 했다.
천체망원경이 흔치 않던 시절, 어린이들에게 별을 보여주고자 했던 그는 병원 등의 협조를 얻어 1997년부터 10년이 넘게 아이들을 위한 별밤잔치를 열었다. 정 교수는 “사춘기 이전에 마음이 뜨거워진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당장 배고프더라도 나중에는 돈과 관계없이 무언가에 심취할 수 있는 바탕이 생긴다”며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접하고 스스로 흥밋거리를 찾는 시간을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교수는 “다만 요즘에는 서울 하늘에서 별을 볼 수 없다”며 “고층건물도 많아졌고 아이들도 바빠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정 교수는 전공의 과정을 밟는 후배의사들의 창의력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의사로서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감수성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정 교수는 “이제 융합의 시대다. 지식은 씨줄과 날줄이 얽혀야 튼튼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멀리 떨어진 지식이 연계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배우는 날줄교육이 중요하다. 지식이 잘 연결되면 하나의 지식이 또 다른 지식을 물어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의학도 문화예술, 과학, 인문학과 융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후배 의사들에게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놨으면 한다.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되 마음에 품은 바가 있다면, 그 꿈이 화석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행복은 자신이 찾는 것임을 명심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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