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물길이 막혀 두 밭 중 한쪽 밭이 마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길을 반으로 갈라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물이 공급되게 하면 된다. 물길을 아예 막고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물길이 막힌 밭은 마르게 되고 결국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유통규제와 관련된 공약 등을 내세우면서 대형마트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등 6대 광역시 1000여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7년 2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전망지수는 기준치인 100에 미치지 못하는 90으로 나타났다.
소매유통경기전망지수는 유통업체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경기를 수치화한 것으로 100을 기준으로 이상이면 호전, 이하면 악화로 볼 수 있다.
관광 등 내수소비수요가 몰려있는 2분기임에도 전망지수가 낮은 이유는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인 관광객 감소와 국내·외 정서불안으로 인한 소비위축이 꼽힌다.
여기에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유통규제와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면서 악재는 더욱 겹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대형마트 의무 휴업 일수를 월 2회에서 월 4회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계에서도 백화점과 대형마트, SSM(기업형 슈퍼마켓) 전부를 일요일에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 등의 규제를 진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통시장 활성화’다. 잇따라 문을 여는 대형마트로 인해 소상공인 등 전통시장상인들의 생계가 어려워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2010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대형마트 영업이 제한됐지만 생각만큼의 실효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대형마트 출점’과 ‘전통시장의 몰락’의 상관관계는 옅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2012년 4755만원이었던 전통시장당 일평균 매출액은 2015년 4812만원으로 1.19% 증가하는데 그쳤다. 정부가 전통시장 지원을 위해 1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은 것에 비해 초라한 성적이다.
반면 ‘대형마트 규제’는 확실한 효과를 봤다. 대형마트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0.9%에 이어 올해 역시 1.1%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 이마트 등은 아예 신규 출점을 멈췄다.
수혜는 엉뚱하게도 편의점 업계가 봤다. 같은 기간 편의점시장은 2015년 24.6%, 지난해 18.6%로 2년 연속 20%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전통시장으로 소비자들이 몰릴 것이라는 정부 예측과는 달리 주거지역에 밀집한 편의점으로 옮겨간 것이다.
답답해진 업계에서는 자생으로 해답을 찾아내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8월 당진 어시장 내 2층에 노브랜드 매장을 입점하면서 어시장에서 판매하는 품목을 일체 제외하는 등 상생에 집중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당진어시장의 방문객은 40% 이상 증가했다. 규제가 아닌 상생이 답이라는 사실을 기업이 스스로 밝혀낸 셈이다.
그럼에도 정계에서는 ‘전통시장 몰락’의 주범을 대형마트로 돌리고 있다. 무조건적인 규제는 업계를 괴사시킬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