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의사로서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이제 의료봉사는 저에게 살아있는 의미,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파키스탄·나이지리아 등지에서 구호 활동에 참여한 마취과전문의 김지민 활동가(54세)의 눈이 빛났다.
김 활동가는 지난 1988년 의사면허 취득 후 30여년간 의사생활을 이어온 중견의사다. 지난 2014년부터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봉사자로 활약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전세계 60개 이상의 나라에서 분쟁, 전염병, 영양실조, 자연재해로 고통받거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긴급 구호활동을 하는 국제인도주의 의료구호단체다.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봉사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워커홀릭’이라 칭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하루도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았어요. 병원은 늘 바쁘게 돌아가고 내가 일을 쉬면 다른 동료가 대신 내 몫을 때문에 많은 의사들이 그렇듯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었죠.” 의사 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김 활동가는 “죽음은 정해진 대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사생활하면서 많이 느꼈다. 내가 내일 죽으면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며 50세가 되던 해 무작정 병원을 그만뒀다고 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김 활동가는 말한다. 병원을 그만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 것이 계기가 돼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나이지리아와 파키스탄 등지로 파견됀 김 활동가는 주로 산부인과프로젝트의 마취과의료진으로 활동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제3세계 국가에서는 아직도 출산 중 태아․산모 사망이 빈번해 산부인과 포지션의 수요가 높다.
김 활동가는 “한 침대에 산모 3명이 나눠 누울 정도로 환자가 몰렸고,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10건 안팎으로 많았다. 두 달 동안 매일 진료에 매달리다보니 몸무게도 10kg이상 빠졌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한국에서 보지 못한 환자 사례도 적지 않았다”며 봉사지에서 겪은 상황을 회상했다. 뒤이어 그는 “정말 힘들었지만 행복하고 보람된 나날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유를 묻자 그는 ‘감사를 깨닫게 됐다’고 답했다. 김 활동가는 “이전에는 내가 못 가진 것에 대한 불평이 많았다. 그런데 봉사를 시작하면서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됐다. 현지 사람들의 해맑고 선한 모습에 동화됐던 것 같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감사했고, 어려운 환자가 나타나면 그만큼 공부하면서 또 감사했다. 의사로서 어려운 사람들에 도움이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감사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서울대학교치과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사로서의 생활은 전과 다를 바 없지만, 봉사자로서 자신이 겪은 제3국가의 열악한 의료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비전이 생겼다고 힘줘 말했다. 김 활동가는 “앞으로도 계속 봉사를 이어갈 것”이라며 “당장 해외봉사지로 달려가는 것은 어렵지만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나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설명회 등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김 활동가는 후배 의사들에게 “의사로서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어려움이 종종 찾아오겠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면 분명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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