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릇의 발전과 커피
음식은 그릇의 발전을 가져왔다. 단순히 곡식을 담아두는 용도로 필요했던 고대인들은 흙을 빚어서 간단하게 구운 그릇을 사용했다. 여기에 간단한 디자인을 더한 것이 빗살무늬 그릇이고, 여기에 편리함을 더해 흙에 꽂아 쓸 수 있도록 밑바닥을 뾰쪽하게 만들었다. 그릇의 모양은 사용자에 의해 필요에 따라 변형되었는데, 고기국물을 끓이거나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하기 위해서 그릇을 강한 불에 구워 견고하게 만드는 도자기가 출현했다.
▲ 도자기 전쟁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도자기를 잘 만드는 기술력이 있었다. 오늘날의 반도체 기술과 같이 당시의 첨단 기술은 단연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일본이 부러워했던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의 도자기 기술자들을 강제로 끌고 간 이유도 사실 그릇을 만드는 기술을 훔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의 수많은 도공들이 전란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서 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유럽의 각종대회에서 조선의 도자기공들이 제작한 도자기가 각종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이것이 미개한 섬나라 일본이 세계에 문화민족으로 탈바꿈하여 소개된 계기였고, 근대화를 앞당기는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 동양의 도자기에 반한 유럽
게오르그 콜시츠키(Georg Kolschitzky)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최초의 카페를 오픈했을 때 그들이 사용했던 커피 잔은 아마도 터키식 커피 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유럽인들은 동양의 도자기 잔에 커피를 담아 마시는 것을 최고의 멋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합스부르크 왕가 박물관에 가보면 당시에 커피를 즐기는데 사용했던 동양의 도자기 잔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께서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경복궁에 지은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靜觀軒)에서 황제가 커피를 마실 때 사용했던 잔도 우아한 조선백자가 아니었을까?
▲ 제 각기 어울리는 그릇
음료에는 저마다 어울리는 그릇이 있다. 막걸리는 표주박이나 바가지에 마시는 것이 멋스러운 것이고, 만약 막걸리를 서양식 그릇에 담아서 먹는다면 막걸리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와인은 와인 잔에, 차는 찻잔에 담아서 마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커피는 커피 잔에 마셔야 한다. 잘못된 그릇의 선택은 커피의 맛과 향을 느끼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에, 잔을 잘 선택하는 것은 향미와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커피시장에서 가장 가볍게 취급되는 것이 바로 그릇이다. 커피는 자판기에서 종이컵에 담겨져 나오기도 하고, 일회용 컵에 담겨져 소비되기도 한다. 커피나 음료를 담기 위해서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비닐 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종이나 비닐소재로 만든 pet 컵을 사용한다. 머그잔도 있지만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을 선호하는 편이다. 손님들의 편의도 위함이지만 설거지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하자
뜨거운 음료는 종이컵, 차가운 음료는 플라스틱 컵, 이것들은 일회용 컵으로 가격도 만만치 않다. 커피 한 잔 가격을 환산 할 때에 일회용 컵이 차지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회용 컵은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커피 한 잔을 종이컵에 담아서 마실 때 그 컵을 만들기 위해 잘라져나간 나무를 생각해야 한다. 아이스 음료를 플라스틱 컵에 담아 마실 때 그 컵이 앞으로 언제쯤 분해될 수 있는지도 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과연 그 컵을 사용할 수 있을까? 최근 서초구청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강남대로에 버려진 쓰레기의 93%가 일회용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이었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 주변의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사용된 테이크아웃(Takeout) 커피 잔이었다. 이제는 커피 한잔을 마셔도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회용 컵을 사용 하는 것은 이대로 괜찮은가? 커피의 맛에도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이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담길 때 그 열수의 온도는 대략 90도에서 95도 정도가 된다. 문제는 이때 발생된다. 대부분의 종이컵은 물이 새지 않도록 비닐로 코팅이 되어있고, 종이를 접착하기 위해 접착제도 사용되는데, 뜨거운 물이 부어지는 순간 비닐성분과 접착제가 열기에 녹아 나오며 비닐이 타는 화학적인 냄새와 함께 환경호르몬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해도 이런 컵에 담긴 음료는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가능하다면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자.
커피의 맛과 향미를 생각한다면 머그잔이나 도자기 잔에 마시는 습관을 갖자. 매장에서 음료를 마실 때는 반드시 비치된 머그컵에 마시도록 하고, 테이크아웃을 해야만 한다면 본인의 텀블러를 가져와서 사용하도록 하자. 이것이 커피의 맛과 환경, 그리고 본인의 건강도 지키는 좋은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