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문대찬 기자] 최근 프로야구는 심판과 관련된 화제로 소란스럽다. 이른바 특정 선수와 팀을 향한 심판진의 ‘길들이기’ 논란이다.
팬들의 주장은 이렇다. 심판과 마찰을 빚은 선수가 나오면 소속 팀이 어김없이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곤 한다.
롯데는 시즌 초반 이대호가 심판의 타구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이후 한동안 의아한 판정의 피해자가 됐다. 이우민의 파울 타구 판정부터 시작해 kt전 오태곤 스리피트 논란, LG와의 8회 승부처에서 나온 정훈의 체크스윙 판정 등으로 승부처에서 고배를 마셨다.
지난 주 역시 길들이기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롯데가 아니라 두산이 그 대상이다.
10일 롯데전에서 오재원이 퇴장당한 것이 발단이 됐다. 오재원은 5회초 무사 2루 타석 풀카운트 상황에서 상대 투수 강동호의 바깥쪽 슬라이더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중계화면상에선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것으로 보였으나 문승훈 구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오재원이 반발하자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문승훈 구심은 퇴장을 지시했다. 이에 오재원이 이성을 잃고 흥분하자 코칭스태프가 필드로 달려와 그를 뜯어말렸다. 덕아웃으로 돌아간 오재원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도대체 몇 번째냐고”라고 소리치며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의아한 퇴장 처분이었다. 항의 과정에서 욕설이나 위협이 될 만한 제스처는 없었다. 예민하고 과도한 처벌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이날 경기는 결국 두산의 패배로 끝났다.
그런데 11일 경기 승부처에서 두산은 판정의 피해자가 됐다. 3대3으로 맞선 6회말 1사 3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롯데 김상호가 투수 앞 땅볼을 때려 3루 주자 나경민이 런다운에 걸렸다.
나경민은 홈과 3루 사이를 오가며 김상호가 2루로 진루할 시간을 벌었다. 그러던 중 유격수 김재호와 맞닥뜨렸고 글러브를 피해 잔디밭 위를 뛰어 달아났다. 나경민의 두 발이 선상 오른쪽 3피트(91.4㎝)를 벗어난 것으로 보였지만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두산측의 항의에도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3피트는 비디오 판독의 대상이 아니어서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것도 불가했다. 두산은 이때 1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했고 결국 이날도 경기를 내주며 상승세가 한 풀 꺾였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논란은 식지 않았다. 승자인 롯데보다 심판 판정에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갔다. 오재원의 항의에 대한 보복판정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이에 김풍기 심판위원장은 “오늘 같은 경우는 3피트의 기준선을 수비수로 둬야 한다”며 “김재호가 선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재호를 기준으로 좌우 3피트를 주루 가능구역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KBO 규정집에 명시된 내용은 다르다. KBO는 규정집에서 ‘3피트란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의 좌우로 각 3피트(91.4cm), 즉 6피트(182.8cm) 폭을 가진 지대를 가리킨다. 이것이 통상 주자의 주로(走D)로 불리는 장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주로로 되돌아오면서 야수의 태그를 피했을 때는 주자와 베이스를 연결하는 직선으로부터 3피트(91.4cm) 이상 떨어지면 아웃이 된다’고 기입돼있다. 즉 김풍기 심판위원장의 해명은 심판진에 유리한 방향으로 룰을 변형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물론 ‘길들이기’는 판정에 격분한 팬들이 만든 일종의 음모론일 수 있다. 그러나 길들이기 논란이 야기된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 이대호와 오재원의 퇴장은 심판의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됐다. 이대호와 오재원이 심판의 권위를 무시하고 침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에서 심판의 권위를 위협할 만한 과격함을 찾을 수 없다. 간단한 항의조차 불허하는 것이 심판진이 생각하는 ‘권위’라면 큰 착각이다.
문승훈 구심이 밝힌 오재원 사태의 전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문승훈 구심은 한 매체를 통해 “내가 땅볼 혹은 하이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했을 지라도 그렇다. 그 순간 나도 착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정당한 판정을 했다”며 자신을 변호했다.
심판도 사람이니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심판은 착각이 정당화되는 자리가 아니다. 들쑥날쑥한 판정으로 심판 자질에 대한 문제가 끝없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권위’만 찾으려하는 행태는 결코 옹호 받을 수 없다. 자신의 실수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선수들에겐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심판진의 모습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길들이기 논란’은 어쩌면 심판진의 자업자득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모를수록 좋은 심판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올 시즌 몇몇 심판들은 거듭 경기장 안팎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며 선수보다 유명세를 떨치는 중이다. 덕아웃에서 오재원이 “도대체 몇 번째냐”고 소리친 것처럼 선수들의 항의는 그간의 해묵은 감정들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심판진도 당혹감과 반발심보다 자성의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닐까. 심판은 ‘신판’이 아니다. 권위는 납득할 수 있는 판정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