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님,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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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증환자 이송서비스 동행 취재①

기사승인 2017-06-16 00:05:00


[쿠키뉴스=김양균 기자] 덜컹. 초여름 뙤약볕에 달아오른 아스팔트가 타이어를 붙잡고는 마구 흔든다. 호소인 듯 비명 같은 사이렌 소리가 다급함을 알리지만 꽉 막힌 도로는 요지부동이다. 요행히 길을 터주는 운전자를 만나도 그 새를 못 참고 끼어든 얌체족들이 내심 얄밉다. 서울 하늘 아래 못가는 곳은 있어도 안가는 병원은 없다. 강북과 강남, 강동과 강서를 가로지르며 중환자를 ‘업어’ 나르는 이들. 첨단 의료장비와 전문 의료진을 갖춘 중환자 이송 엠블런스, ‘달리는 중환자실’로 불리는 ‘서울시 중증환자 이송서비스(SMICU)’ 이야기다. 

지난 13일 한 평 남짓 흔들리는 차안에서 환자를 돌보는 SMICU 의료진의 일상을 엿보았다. 울렁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식사는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서울 전역의 병원과 병원을 오가며 중환자를 이송하는 ‘런닝맨’들의 하루는 오전부터 부산했다. 

오전 7시30분 서울대병원 한쪽에 주차되어 있는 SMICU 엠블런스 안으로 의료진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무릎을 맞대고 앉은 김태한 응급의학과 교수(35), 박혜나 행정 간호사(36), 허소라 간호사(30), 문영주 응급구조사(46)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아침까지의 이송 경과를 인계받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 SMICU 의료진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6명에 간호사 3명, 1급 응급구조사 6명으로 구성된다. 전문의는 2교대로,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로 구성된 처치팀은 3교대로 일한다. ‘7회 연속 중환자 이송’의 신기록을 세운 장본인, 선경민 교수(36)는 응급센터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서울에서만 매년 4600건의 심장정지와 8000여건의 중증외상, 2만5000건의 심뇌혈관 응급환자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24시간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기관은 55개 응급의료 기관 중에 10여 곳에 불과하다. 중증응급환자의 병원 간 이송이 잦은 이유다. 문제는 이송 과정에서 생긴다. 특수구급차라해도 기본 의료 장비밖에 없어 전원 과정에서 중환자의 모니터링과 처치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응급의료기본계획수립 및 응급의료체계운영평가 보고서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3개 지역의 9개 응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료기관간의 부적절한 처치(20~25%)는 물론, 불안정한 상태의 환자를 이송 시 절반에 가까운 40.7%에서 의료인의 동승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외상환자 23례 중 15례가, 쇼크 환자 10례 중 9례시 상태가 악화됐다. 

오래전부터 중증환자에 특화된 이송서비스의 필요성이 대두돼왔다. 송경준 센터장(45·서울대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은 SMICU에서 국내 중환자 이송의 가능성을 본다. “SMICU는 중환자를 돌볼 수 있는 충분한 장비와 인력이 갖춰져 있어 중환자실과 동일한 처치가 이뤄진다.” 그만큼 약과 여러 소모품도 들어간다. 비용은 오롯이 서울시 예산 10억원으로충당된다. ‘고작 구급차 한 대에 10억’이냐며 힐난할 수도 있겠지만 물품과 장비, 차량 유지 보수, 인건비 등을 제하면 예산은 빠듯하다. 모자란 부분은 의료진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7시57분. 아직 회의가 한창이다. 전날 스케줄이 ‘꼬여’ 한숨도 못잔 김태한 교수의 머리카락엔 기름이 줄줄 흐른다. SMICU와 응급센터를 오가며 일하는 탓이다. 나머지 팀원의 상태는 그나마 나았다. 피곤함이 역력한 의료진은 차 안에서 꽤 긴 시간의 회의를 진행했다. 이곳에서의 미팅은 색달랐다. 의료진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것은 심리적 거리차를 좁히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들도 과연 그러한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기자가 지금껏 접한 의료팀 중에 SMICU 의료진의 팀워크는 높은 축에 속했다. 팀원간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응급실의 전문의와 간호사, 응급구조사의 관계는 업무 특수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매우 좋다’고 표현키 어려운 감이 있음에도 적어도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기자에게 SMICU 내부에 장착된 여러 의료장비에 대한 설명을 주욱 해주었다. 세세한 명칭일랑 생략하도록 한다. 다만 그의 말은 ‘중환자에게 필요한 건 전부 갖춰져 있다’고 정리될 수 있겠다. 내부는 의료진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흔들림을 최소화하고자 용접을 한 것이나 손에 맞게 요밀조밀 장비와 약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둔 것까지 곳곳에서 이들의 손때가 물씬 풍긴다. 차량 자체의 가격만 2억원을 훌쩍 뛰어넘고, 내부의 장비까지 모두 합하면 수억에 달한다. 서울시 사업을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만큼 조금도 소홀할 수 없다. SMICU는 시민의 자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새로운 차가 한 대 더 들어왔다. 김 교수는 기자에게 멀찍이 떨어진 ‘새 차’를 보여주었다. 괄목할만한 변화이지만 의료진의 고충은 늘어날 공산이 크다. 한정된 팀원의 운용은 또 다른 문제다. 새 차는 흡사 이렇게 외치는 듯 했다. ‘보건복지부여, SMICU에 관심을 갖길!’ 이와 유사한 특수구급차를 마련한 민간병원도 있지만 공공의료사업에 사용되는 것은 SMICU 뿐이다. 의료진이 자부심을 갖는 이유이지만, 한편으론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물론 타 지자체와 민간병원도 할 말은 있다. 중증환자 이송서비스를 운용하려면 ‘돈’의 압박이 크다. 서울대병원은 서울시 예산이 있기 때문에 SMICU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공공의료는 값지지만 의료수익과는 별개이다. 값싼 저질 의료 대신 값진 공공의료사업을 하려면 어떤 식으로라도 값이 든다.  


“B병원에서 S병원으로 이송된 60세 환자분은 폐암으로 쓰러진 채로 발견됐고요.” 이송 환자에 대한 처치와 출발 및 도착 시각, 전원 이후의 환자 상태 등 이송 전반에 대한 내용이 꼼꼼하게 기록된다. 늘 처음이 어렵다. 나홀로 걷고 말 것이 아니라, 뒤에 올 이를 위해 길을 닦아 놓아야 한다. 의료진의 경험을 세세한 것까지 기록으로 남겨두는 까닭이다. “여러 의료진이 번갈아가며 차에 타기 때문에 서로의 상황을 잘 맞추고 아이디어를 모아야만 해요. 일종의 ‘경험 나누기’인 셈이죠.” 김태한 교수가 말했다. 

“위중한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데 앞의 차가 비켜주지 않으면 애가 타요. 전원한 병원의 의료진과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 경우도 있고요.” 응급센터와 중환자실에서 십수 년 청춘을 다 보낸 박혜나 간호사는 현재 SMICU의 행정 작업을 도맡고 있다. SMICU에 합류한 이후 그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모자란 인력과 밀려드는 예약 덕분이다. 비단 박 간호사뿐만이 아니다. SMICU 의료진은 손이 맵고 크다. 일당백이다.  

“현행법상 환자를 태우고 있지 않으면 교통신호를 다 지켜야 해요. 그런데 저희를 기다리는 환자분이 있잖아요. 그럴 때 답답하죠.” 문영주 응급구조사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SMICU는 하루 평균 2~3회 출동한다. 도로 교통 상황을 고려하면 이송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적지 않게 걸린다. 중증 응급환자가 있는 병원엘 가서, 환자를 ‘업고’ 다른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서울 곳곳을 달린 1년 6개월. 홍보가 부족해 의료진은 나름의 자구책을 쓰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거나 ‘단골’을 뚫고자 정기적으로 ‘선물’을 들고 타 병원엘 방문하기도 한다. 선물은 마우스패드, 볼펜, 홍보 팸플릿. 소박하다. 이렇듯 의료진의 어설프고 성긴 ‘영업’은 귀여우면서 다소간의 애잔함마저 들게 한다. 

예약이 늘어난다고 해서 병원이나 의료진의 지갑이 두둑해지는 일은 ‘전혀’ 없다. 타병원들이 SMICU를 이용하면 할수록 의료진은 도로 위를 동분서주하게 되고, 식사를 거를 확률도 많아진다. 그렇지만 이들은 퍽 열심이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선뜻 질문을 던지기는 어려웠다. ‘뭣한다고 도대체 왜?’ 속물근성의 기자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첫 출동 시각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후.

기자는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멀미약을 먹어둘걸.’ SMICU는 환자에게 최적화됐지만 쉴 새 없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의료진에겐 적잖이 불친절하다. “멀미약을 드시는 게 좋을 텐데, 후후후.” 허소라 간호사가 보인 의미심장한 미소의 의미를 진작 눈치 챘어야 했다. 그날 저녁식사는 건너뛰어야 했다. 멀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뱃사람들이 배에서 내린 후 느낀다던 멀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관계가 왜 끈끈한지, 왜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계속)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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