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문대찬 기자] 프로야구가 소란스럽다. 그간 뇌물 수수 의혹의 중심에 있던 A심판과 B구단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최규순 심판과 두산 베어스가 비로소 민낯을 드러냈다.
그간 막연한 의혹으로만 존재했던 돈을 건네받은 심판과 돈을 건네 준 구단은 실재했다. 지난 2일 한 매체는 최규순 심판과 두산 베어스의 이름을 똑똑히 거론하며 파문을 던졌다.
때는 2013년으로 거슬러간다.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둔 10월15일 최규순 심판은 두산 고위 관계자에 금전을 요구해 현금 300만원을 받았다.
모종의 거래가 의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기도 맞물렸다. 당시 최규순 심판은 플레이오프 1차전 구심을 맡았다. 야구는 볼 하나에 승부가 갈리는 예민한 스포츠다. 두산이 LG보다 유리한 볼 판정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두산 측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금전을 대여한 것은 사실이나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처음에는 폭행 사건의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최규순 심판의 말을 믿었지만 재차 이어진 금전 요구는 거부하고 KBO에 자진 신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성난 팬들 앞에 두산의 해명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했다. 의도가 어떠했든 구단과 심판의 돈 거래는 리그 존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에 곳곳에서 두산의 우승 자격을 박탈하고 리그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KBO가 이 사건의 공범이며 몸통이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KBO는 최규순과 두산의 돈 거래 의혹을 파악한 뒤에도 상벌위원회 안건을 비공개로 처리해 은폐했다. 최규순 심판에 내려진 최종 징계는 파면이 아닌 권고사직이었다.
뿐만 아니다. KBO가 오래 전부터 위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매체가 밝힌 내부 문건에 따르면 KBO는 지난해 심판 뇌물 수수 보도가 나가기 전부터 최규순 심판이 도박 빚 등을 갚기 위해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리고 다닌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KBO는 돈을 빌린 지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구체적 조사를 회피했다. 오히려 이를 외부에 알리기보다 축소하고 은폐하려 애썼다. 이들에겐 건강한 리그 구축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 명예 지켜주기 등이 우선적인 가치였다.
또 KBO는 최규순 심판이 지인 대출 전용 계좌를 갖고 있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법기관에 의뢰해 두산 이외의 제2, 제3의 구단을 색출하려 들지 않았다.
KBO의 해명도 두산 측과 동일하다. 해당 사건 다음날 모니터링을 실시했지만 최규순 심판의 승부개입에 대한 어떤 혐의점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대가 없이 행한 개인적인 거래에 불과하단 것이다.
KBO의 이번 해명에서 어느 사건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다. “A 심판 개인이 저지른 갈취행위일 뿐 대가성 있는 승부조작은 아니었다”는 KBO의 발언은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조사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입장과 비슷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대가성 뇌물을 받은 정황이 여럿 있음에도 대기업이 순수한 목적에서 정부를 지원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가 없는 돈거래'라는 유사한 해명을 내놓은 KBO 양해영 사무총장은 재판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보좌관 출신이다.
심판 판정에 대한 의혹과 불신이 터져 나올 때마다 야구팬들은 심판이 뇌물을 받은 것 아니냐는 농담조의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 막연한 불안감과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됐다.
이번 사건은 곧 리그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KBO의 말 뿐인 사과는 더 이상 이를 진화하기 힘들다. 3일에는 넥센 구단이 최규순 심판에게 돈을 송금하려다 주저한 사실이 보도됐다. 두산과 넥센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KBO를 포함한 모든 구단이 이번 사태의 공범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의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문체부 역시 스포츠계에 만연한 적폐를 깨부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9일 문체부는 KBO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스포츠 적폐 청산의 첫 과녁은 KBO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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