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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풋볼(Football)’의 정의는 지금도 뜨거운 감자다. 1870년대 미국은 ‘풋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흔히 알려진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다. 하지만 유럽 등 타 대륙은 ‘풋볼’과 ‘아메리칸 풋볼’을 구분 짓는다. 이들에게 ‘풋볼’은 오로지 ‘축구(Soccer)’다.
수치만 놓고 보면 미식축구는 축구를 이겼다.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에 따르면 2016년도 기준 북미 슈퍼볼(미식축구 NFC 우승팀과 AFC 우승팀이 겨루는 챔피언 결정전)의 브랜드가치는 6억3000만 달러로, 월드컵 가치(2억2900만 달러)를 월등히 넘어섰다.
미국은 ‘풋볼은 축구’라는 전 방위적 목소리에 개의치 않다. 이들에게 풋볼은 럭비다. 굳이 반박할 것 없이 지표가 말해준다. 결국 두 풋볼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블리자드도 ‘풋볼 드림’을 꾸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발표한 오버워치 리그 계획을 보면 다른 지역에서 왈가왈부하든 ‘마이 웨이’를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한국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내용이다. e스포츠에서 e를 떼겠다는 야심찬 포부의 이면에는 e스포츠 총본산을 한국에서 북미로 옮겨가겠다는 발상이 깔려있다. 돈으로 말이다.
블리자드는 12일 오버워치 리그에 참전할 7개 팀 연고지와 소유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올랜도, 샌프란시스코, 서울, 상하이가 첫 번째 시즌에 참전한다.
당초 예견된 대로 미식축구 리그 NFL 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구단주 로버트 크래프트가 보스턴을 연고지로 팀을 꾸린다. 관심을 모은 로스엔젤레스는 임모털즈 CEO 노아 윈스턴이 구단주다. 이 외에도 제프 윌폰 뉴욕 메츠 최고 운영 책임자, 벤 스푼트 미스핏츠 게이밍 CEO, 앤디 밀러 NRG e스포츠 회장 등 스포츠계 유명 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서울은 미국 게임사 카밤 공동 설립자인 케빈 추, 상하이는 중국 내 블리자드 게임 퍼블리셔인 넷이즈가 맡았다. 서울 연고지의 경우 국내 방송사, 게임구단 등과 접촉설이 나돌았으나 탁상공론에 그치며 제3의 인물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국내에서 블리자드의 무시무시한 요구를 들어줄 업체는 없었다. 복수의 외신은 블리자드가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도시 연고의 오버워치 리그 참가 등록비로 2000만 달러(약 227억 원)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2021년까지 리그 개최로 인한 수익 분배가 전무하고, 시드권 판매시 25%의 수수료를 블리자드에 떼야 한다고 전했다.
블리자드가 제시한 금액은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팀 등록비(1800만 달러)를 웃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이다.
e스포츠 종목은 단명성(短命性)을 띤다. 업계에 따르면 e스포츠 종목의 수명은 길면 10년, 짧으면 3년이다. 여기에 220억 원의 거금을 선뜻 투입할 수는 없다. 더구나 국내 e스포츠 시장은 그 절반조차도 지불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블리자드의 ‘들어주지 못할 쩐의’ 요구가 북미에서 성사됐다. 자연스럽게 오버워치 e스포츠 대회는 그 중심지가 북미로 옮겨갈 터다. 협상에 난항을 겪던 서울 연고지는 UC 버클리 출신 엘리트를 앞세워 리그에 포함시켰다. 한국은 지난해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무실세트 우승을 차지했다. e스포츠 종주국이자 강국인 한국을 빼긴 애매했을 것이다. ‘텐센트+알리’로 축약되는 중국시장의 잠재력 또한 상하이 삽입으로 해결했다.
연고제를 표방한다는 이 대회는 매우 비정상적인 모습이 됐다. 연고제의 기본은 홈&어웨이다. 1만㎞가 넘는 광범위한 구역에 연고지가 누더기로 배치됐다. 블리자드는 당장 경기장 인프라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LA에서 대회를 열겠다고 했다. 이후 여건에 따라 타 지역 스플릿으로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바꿔 말하면 일단 북미대회에 타 유망 연고지를 포함시킨 뒤 ‘각’이 보이면 지역별로 리그를 출범하겠다는 소리다.
대회 존치에 대한 비관론이 쇄도하는 상황에서 아시아, 유럽 등의 세컨더리 지역대회가 출범할지는 알 수 없다. 지역연고제 발표 전후로 디그니타스, 스플라이스, 팀 솔로미드(TSM) 등 굵직한 팀들이 해체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상당수 팀이 해단했고 아프리카 등은 팀 축소에 들어갔다. 아울러 열악한 팀 운영 환경, ‘보는 재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게임 점유율 감소세, 지지부진한 팬덤 등 ‘아메리칸 드림’ 대비 절망적 지표들이 즐비하다.
거대한 자본금과 무너져가는 여론 사이의 괴리도 크다. 지금껏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도, 현장에서 취재하는 매체들도 블리자드의 불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대회가 기존 e스포츠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난도 상당하다.
‘북미리그’를 준비 중인 스태프(staff) 상당수는 e스포츠가 아닌 스포츠 전문가로 꾸려져있다. ‘글로벌 총괄’이라는 완장을 차고 국내에 온 블리자드 담당자의 설명 역시 기존 e스포츠의 동떨어져 있었다. 그는 결정된 내용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광활한 계획은 부연이 없었다.
오버워치 리그가 천문학적인 자본금을 품에 안고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은 아직이다. 생각의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그라진다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미 한국 e스포츠계는 중국 알리스포츠의 일방 협상에 크게 덴 경험이 있다. ‘쩐’으로 범벅된 리그 출범에 한국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고민해볼 문제다.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