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앨라배마 주의 암소(11살)에서 비정형 소 해면상뇌증(BSE,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는 미국의 역학조사가 완료되기도 전에 이번에 발견된 비정형 광우병은 감염 전파가 낮고, 정형 광우병에 비해 안전하다고 밝혔다. 수입금지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 현물검사 비율을 기존의 3%에서 30%로 확대키로 한다는 ‘나름의 대책’도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농식품부의 ‘조치’는 납득키 어려운 것이라는 비판이 거듭 제기된다. 2015년 캐나다와 브라질에서 각각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우리 정부가 즉각 수입을 중단한 것과는 모순되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여러 언론을 통해 ‘비정형 광우병은 안전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입증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먹을거리와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일선 현장에선 혼선과 두려움이 감지된다. 쿠키뉴스는 26일 한살림서울에서 열린 ‘미국의 5번째 광우병 발생 사태에 대한 전문가 기자설명회’를 기사로 중계한다. 2008년부터 광우병 안전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의 설명은 농식품부의 구두 발언과는 매우 달랐다.
▷우희종 교수=2008년 서울시청광장에 촛불시민들이 많이 모였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미국 쇠고기와 관련한 촛불의 본질은 불공정한 수입 조건에 대한 국민들의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맺은 조약은 전 연령대의 쇠고기는 물론, 광우병 위험이 높은 특정 부위까지 수입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촛불시민들이 이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미국 쇠고기에 대한 온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란 주관적이고 한시적인 조건하에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최초 미국과 맺은 수입조건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주변국들도 이를 다 따를 것이라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대만과 일본은 2013년이 되어서야, 중국은 올해부터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이명박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왜 한국은 아직까지 안전한 30개월 미만의 수입을 ‘공식 조건’으로 맺고 있지 않을까요?
정부는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비정형 광우병이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정형 광우병이 정형 광우병에 비해 역학적으로 위험성이 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정형 광우병의 두 가지 유형, H타입(H-BSE)과 L타입(L-BSE) 중 이번에 발견된 L타입이 지극히 위험하단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노령의 소에서 발생, 역학적으로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단 점에서 정형 광우병보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정형 및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하면 정부는 공식적인 역학조사가 끝날 때까지 수입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조사가 제대로 끝난 후에 수입재개를 하는 것이 상식적인 조치입니다. 이는 국내 수입조건과 세계무역기구(WTO)의 기준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4번째로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미국의 통보를 받자마자 역학조사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국민을 호도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의 공식적인 역학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 정부가 나서서 ‘안전하다. 괜찮다’는 태도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조건(30개월 미만 수입) 역시 타당할까요? 촛불시민에 의해 탄생한, 그래서 민의를 반영할 정권이라면 당당하게 미국에게 재협상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입 중단 및 현재 수입조건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합니다.
▷조능희 피디=저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 보도를 처음 했을 때, PD수첩 일원들도 광우병 전문가는 아니었습니다. 광우병 사안은 여러 전문용어가 나와서 어려울 것 같지만, 주의 깊게 보면 현안을 금세 파악할 수 있습니다. 2008년과 2012년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됐을 당시, 기사들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이 광우병에 대해 설명하면 기자들은 알아듣질 못해서 질문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를 상대하는 정부조직의 관료들은 상당히 세련된 사람들입니다. 그 일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보도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들이죠. 호도를 할 줄 알아요. 경험적으로 볼 때 언론인들은 사안의 이면을 잘 파고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렵다고 생각하고, 전문가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4개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얽혀 있습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광우병 안전성을 국민 건강 측면에서, 과학적 사실에 의거해 일관된 이야기를 하는 그룹은 오늘 모인 전문가들이 유일합니다. 정권과 관료, 일부 언론의 태도는 바뀌어도 과학적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재 농식품부에 광우병 정보를 요청해도 ‘과거 자료를 찾아보라’고 한답니다. 결국 광우병은 ‘일관된’ 과학적 사실만 존재합니다. 이를 해석하고 시대적 협상을 맺을 정부와 관료만 변했을 뿐입니다. 일관된 전문가들의 설명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2008년 PD수첩이 처음 광우병 보도를 하자, 당시 기자들조차 ‘끓여먹으면 문제없을 줄 알았다’고 반문할 정도로 정보에 어두웠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후 기자 생활을 시작한 언론인들은 광우병 보도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올바른 보도는 결국 기자들이 차근차근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어 보도해야한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우석균 부대표=비정형 광우병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성 사료 정책에 의해 전형적으로 드러난 광우병을 ‘정형(전형적) 광우병’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광우병 증상을 보이지만 전형적 병원성 프리온과는 또 다른 프리온이 발견됩니다. 병원성 프리온 단백질의 분자량이 높은(High) 타입의 광우병을 H타입(H-BSE), 분자량이 낮은(Low) 광우병을 L타입(L-BSE)이라고 합니다. 광우병을 일으키되 원인 물질이 다른, H타입과 L타입을 묶어 ‘비정형 광우병’이라고 부릅니다.
프리온 질환(광우병)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합니다. ‘프리온 질환이 안전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국제수역사무국(OIE)과 세계보건기구(WHO)는 프리온 질환에 의한 감염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자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가령, 프리온 질환에 걸린 환자의 수술에 사용된 의료도구는 곧장 폐기토록 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정형·비정형 광우병은 위험하긴 매한가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정형·비정형 광우병 모두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다른 동물을 감염시킵니다. 특히 비정형 광우병의 L타입은 마우스, 햄스터 양, 소, 형질변경 마우스, 영장류로의 감염이 동물실험을 통해 이미 확인됐습니다. 섭취를 통해 소에서 소로의 감염도 확인됐습니다. 이는 L타입 비정형 광우병이 인간에게 감염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정형 광우병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비정형 광우병을 동물에게 투여한 결과, 정형(전형적) 광우병으로 나타난 사례가 보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성 사료체계 즉, 소가 소를 먹는 사료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오염된 사료를 먹은 소에게서 정형 광우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본 내각 식품안전위원회와 유럽식품안전청은 이 부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비정형 광우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여선 안 된다는 겁니다.
정형 광우병에 감염되면 변형프리온은 주로 뇌와 척수 등 중추신경계에 존재합니다. 병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말초신경계까지 퍼집니다. 반면 비정형 광우병은 발병 시부터 변형프리온이 말초신경계까지 완전히 다 퍼집니다. 살코기에서도 병원성 프리온이 발견된다는 사실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EURL(EU reference laboratory)은 소의 삼두근 근육(Triceps muscle), 중간 둔부 근육(Medial gluteal muscle), 외안근 근육(Extra-ocular muscles) 등 살코기 부분에서 광우병 프리온이 발견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근육에서도 광우병 프리온이 발견되는 비정형 광우병의 특징은 결국 모든 가축에 대한 동물성 사료 금지 정책을 펴야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유럽은 모든 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일본은 비정형 광우병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과학적 진실이 확립될 때까지 광우병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특히 유럽식품안전청은 소극적 감시정책, 즉 주저앉거나 병에 걸린 소에 한정된 광우병 검사를, 건강한 소에게까지 시행하는 ‘적극적 감시정책’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광우병 잠복기의 소가 동물성 사료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전형·비정형 광우병 발생률(2001년~2014) 조사 결과를 보면, 건강하게 도축된 소(Healthy slaughtered animals)에서는 비정형 광우병 H타입(10건)과 L타입(20건)이 발견됐습니다. 주저앉은 소(Fallen stock)에서도 각각 24건과 23건이 발생했습니다. 적극적 감시를 통해 건강한 소에서도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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