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내가 자살예방협회장하거나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있으면서 (안)철수의 도움을 꽤 받았어.” 하규섭 서울대의대 교수의 ‘말’입니다. 하규섭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2004년~2008년), 한국자살예방협회장(2010년~2013년), 국립서울병원장(2013년~2016년) 및 국립정신건강센터장(2016년)을 거쳐 현재 서울대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겸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장에 재직 중입니다. 또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서울의대 80학번, 40회 동기이기도 합니다.
정신건강 분야의 상당한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하 교수는 복지부 산하 공공의료기관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명실공히 사회 지도급 인사이자 공인입니다. 그런 그가 2008년께 김미경 교수를 분당서울대병원에 영입하려했다는 사실을 쿠키뉴스가 폭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영입 작업의 당사자인 하 교수의 육성 증언이라는 뒤집을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한터라, 보도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쿠키뉴스는 <[단독] 분당서울대병원, 安 부인 김미경 교수 ‘모셔가려’ 했다(6월 27일)>, <[단독] “김미경이를 뽑지 못해서 철수랑 서먹해졌다”(6월 28일)>, <[단독] 국내법 모르는 김미경 교수에게 ‘의료법무교수’ 맡기려 했다(7월 5일)>, <[단독] 하규섭 전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김미경 교수 ‘꽂으려’ 했다(7월 20일)> 등 총 4회에 걸쳐 단독 보도했습니다.
당시 국민적 관심은 국민의당의 문준용 녹취 조작 사건에 쏠려있는 터라 기자의 보도를 접한 대중의 분노는 상당했습니다. 안 전 대표의 지지자들과 국민의당 일부 관계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짜뉴스’와 ‘마타도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가짜 뉴스로 조작하다 구속되는 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기자에겐 수차례 협박성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이 날아왔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와 김미경 교수에게 화살이 돌아간 동안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 서울대의대는 비교적 침착한 모습이었습니다. 하 교수는 녹취록의 목소리는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 교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녹취록이 가짜이던지 말입니다.
쿠키뉴스는 여러 번 녹취록의 부분을 기사에 상세히 실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하 교수인지에 대한 성문분석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녹취록 곳곳에는 하 교수 스스로 한국자살예방협회장과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서울대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신분임을 거론하는 부분이 심심찮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녹취록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다는 일부 의료전문매체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병원 측의 주장을 사실 확인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쓴 겁니다. 언론 보도에 대한 대중의 다양한 의견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상대측을 이른바 ‘커버치는’ 보도는 유감스럽습니다. 한편으론 서울대의대의 ‘힘’을 말해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하 교수가 분당서울대병원에 김미경 교수를 영입하려 한 것이 어떤 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현격한 문제가 있다’ 입니다. 우선, 김미경 교수가 과연 분당서울대병원의 해당 교수직에 적합한 후보였느냐부터 다시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하 교수의 육성 증언에 의거, 교수의 형태는 연구교수, 진료교수, 임상교수, 기금교수 등으로 압축됩니다. 특채가 없는 임상교수를 제외하면, 진료교수의 채용규정을 이렇습니다. 서울대병원의 ‘진료교수 및 진료의 운영규정’에 따르면, 진료교수 임용사유는 다음의 하나여야 합니다. ‘진료공백이나 진료적체 등을 해소’나 ‘교육·연구 등의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그것입니다. 진료교수 및 진료의는 해당 부서장의 추천을 받아 진료교수 및 진료의 전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병원장이 임용하게 됩니다. 진료부원장·소아진료부원장·암진료구원장·의생명연구원장·기획조정실장·교육인재개발실장 등으로 구성된 전형위원회를 통과한 후보의 직급은 경력·학위·연구실적 등을 고려해 원장이 결정하게 됩니다.
연구교수는 연구·교육을 위해 임용됩니다. 서울대병원의 ‘연구교수 운영규정’을 보면, 연구교수의 임용은 임상연구위원회가 관장합니다. 임상연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면, 원장이 임용하게 됩니다. 외부 재원의 경우, 연구책임자의 추천에 따라 이뤄집니다.
그러나 분당서울대병원과 하 교수는 “변호사이면서 의사인 사람을 찾았다”고 주장합니다. 김미경 교수는 어떨까요? 김 교수의 전공은 병리학입니다. 미국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2년 동안 스탠퍼드대학에서 법과생명과학센터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추고 있으니, 일순 그럴듯한 인재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설명은 이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의료분쟁을 비롯해 병원의 크고 작은 계약 등 병원 사정과 국내법에 능통한 사람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국내 변호사 자격증 소유자를 원했다고도 밝혔습니다. 하규섭 교수가 김 교수를 영입하려한 이유는 더욱 미궁 속에 빠져듭니다.
하 교수가 “김미경 교수가 카이스트로 가버려 대신 뽑았다”는 교수직은 ‘단기간 계약직’이라는 게 분당서울대병원의 설명입니다. 2008년께 정계입문 전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안철수’의 유명세를 감안하면 부인 김미경 교수를 이러한 ‘계약직’으로 채용코자 병원장부터 기획조정실장이 움직였다고는 납득키 어렵습니다. 김 교수의 서울대의대 동기들과 내과를 비롯한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는 증언을 미뤄볼 때, 당초 이 자리는 더 높은 권한의 신분이지 않았겠냐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합니다.
이제 남는 건 ‘왜’ 입니다. 왜 하 교수는 김미경 교수를 영입코자 했을까? 다음의 추가 녹취분은 처음 공개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왜’라는 물음의 답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복지부 공무원이고 (안)철수가 보건복지위 의원이니까. 그래도 (안)철수가 이제 옛날에 그런 것도 있고 하니까 자살행사하면 다 와주고….”
“공무원들한테는 그런 게 크거든. (안)철수가 내 앞에 와서 일부러 인사한 번 하고 둘이서 얘기 한번 하고 가면 공무원들이 볼 때는 ‘어휴,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 그렇게 도움이 알게 모르게 꽤 있거든.
“(안)철수는 보좌관이 둘이야. 제너럴 그리고 보건의료. 보건의료쪽 보좌관이 좀 시원찮은 애야. 그리고 보건의료쪽은 지가 직접 컨택 안 해. 절대로. 의사라는 게 정치적 행보에는 마이너스. 의사라고 안하는 거야.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복지만 하는 거야. 복지 때문에 간 거야. 요즘 정치를 하려면 다 복지를 해야 하니까. 보건을 일부러 전혀 관여안해.”
“자살 이런데 관심 갖는 것도 복지로써 관심을 갖는 거야. 보건의료에 대한 관심이 아냐.”
보건복지부와 한국자살예방협회,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자살 관련 행사에 안철수 전 대표가 참석한 적이 있는지 ‘팩트체크’를 해봤습니다. 있었습니다. 2013년 9월 10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The-K 서울호텔에서 열린 ‘2013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 자리에서 안철수 당시 의원은 내빈으로 참석, 격려사를 전합니다. 이 자리에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복지부 공무원, 각종 언론 단체, 그리고 국립서울병원장이었던 하규섭 교수도 참석했습니다.
하 교수가 안 전 대표와 친분을 과시한 장면이 때마침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복지부 공무원들이 하 교수의 말처럼 ‘함부로 건드리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대선 이후 모든 언론이 안 전 대표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감안하면, 녹취록 속 하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을 마냥 허풍으로만 치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하 교수는 관심은 김미경 교수보다 안철수 전 대표를 향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힘을 과시한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른바 ‘하규섭 녹취록’ 취재를 하면서 자꾸만 이 고사가 연상되는 것은 기자의 과도한 상상력 때문일까요?
▷사진①=지난 4월 21~23일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제주도 워크숍 당시의 하규섭 교수. 그러나 <아시아경제>는 <[단독]"연구비로 제주관광"…제정신 아닌 서울大 정신과 교수들> 제하의 기사에서 이들이 학교 연구기금으로 관광성 출장을 갔다고 보도해 논란이 됐다.
▷사진②=2013년 9월 10일 ‘2013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 자리. 안철수 전 의원과 하규섭 전 국립서울병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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