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창원=강승우 기자] 20대 A(여)씨는 성인이 된 후에도 13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라 지금도 몸서리를 친다.
A씨가 죽도록 잊고 싶었던 그날의 사건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 어머니는 우연히 알게 된 버스 운전기사 B(당시 51세)씨와 내연관계에 있었다.
그 해 여름 A씨 어머니는 경남 거제의 한 모텔에서 B씨를 만나기로 했다.
A씨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이 자리에 따라오게 됐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B씨를 제외한 누구도 몰랐다.
모텔에서 A씨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자 B씨는 본색을 드러냈다.
B씨는 A씨 저항에도 자신의 욕정을 채웠다.
큰 충격도 잠시 A씨는 이내 그 자리에서 다시 B씨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B씨의 인면수심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가을 B씨는 A씨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 같이 나왔던 A씨를 재차 강제추행했다.
하지만 A씨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사실 A씨 어머니는 혼자서는 전화를 걸지도 못하고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기 힘들 정도의 지적장애가 있었다.
그래서 A씨 어머니는 외출할 때 항상 A씨를 데리고 다녔다.
A씨 아버지도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마땅히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A씨에게 또 한 번의 불행이 찾아왔다. 그해 겨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했다.
A씨는 다른 지역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면서 B씨를 제때 신고하지도 못했다.
애석하게도 이 당시 A씨는 자신이 겪은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어렸다.
A씨는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무렵 B씨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B씨를 찾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 때 겪었던 피해 사실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A씨는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B씨를 잊은 적이 없었다.
A씨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A씨는 지난해 3월 아버지를 배웅하러 간 대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B씨를 보게 됐다.
12년 만이었지만 A씨는 보자마자 그가 B씨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후 A씨는 자신과 함께 살고 있던 고모에게 처음으로 어렸을 때 B씨에게 당했던 가슴 아픈 상처를 털어놨다.
고모가 B씨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결국 B씨는 사건 발생 13년 만에 13세 미만 미성년자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법정에서 “A씨를 성폭행하거나 강제추행한 사실이 없다”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나아가 B씨는 “A씨 어머니와 내연관계에 있지도 않았거니와 이들 모녀와 함께 그 당시 모텔에 간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는 달랐다.
13년 전이었지만 B씨 범행 당시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A씨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B씨 얼굴, 이름, B씨가 타고 다닌 차량 번호를 절대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A씨는 B씨가 소속돼 있던 버스회사의 이름과 버스 번호 뒷자리 4개, 운행구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확인 결과 실제 같은 이름의 버스회사가 있었고, 이 회사에 A씨가 말한 4자리 번호의 버스 차량도 있었다.
그런데도 B씨는 자신이 운행한 버스 번호 뒷자리는 A씨가 말한 4자리 가운데 맨 끝자리 1개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B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A씨가 B씨 버스를 알지 못하면 4자리 번호 가운데 3자리를 특정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A씨 진술이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는 과거 아픈 기억이 있던 모텔 등 건물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위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런 점으로 미뤄 재판부는 A씨가 피해 장소도 허위로 지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어머니와 내연관계였다는 점만으로 B씨에게 원한을 품었다고 보기 어렵고, 12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B씨를 무고하기 위해 수치스럽고 충격적인 성범죄 피해 사실을 허위로 꾸며내거나 과장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창원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장용범 부장판사)는 B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B씨는 사건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는 어린 나이에 성범죄에 노출돼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심한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는 여전히 건전한 성적가치관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선고했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2006년 6월30일 이전에 발생한 성범죄로 현행법상 소급적용이 되지 않아 B씨는 신상정보 등록‧공개‧고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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