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서울대병원이 쿠키뉴스의 ‘왜 하규섭 서울의대 교수는 '가가가가각' 발언을 했을까?’ 제하 보도와 관련, 하규섭 서울대의대 정신과 교수 입장을 보내왔다. 하 교수는 입장문을 통해 “특정 환자나 정신과 환자를 비하하거나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면서 “정신의학을 배우는 의대생들에게 전문적인 내용을 교육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 교수는, 그러나 “학문적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임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만 밝힐 뿐, 진료와 교육 일선에 계속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해 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 ‘사과문’이 아닌 ‘입장문’을 밝힌 것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 쿠키뉴스는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하 교수의 입장 전문을 싣는다.
제 강의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하여 원래의 취지와 달리 전달된 부분이 있어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이로 인해 정신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 분들께 심려를 끼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특정 환자나 일반적인 정신과 환자를 비하하거나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실제 그렇게 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강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중강연이 아니라, 정신의학을 배우는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내용을 교육한 것입니다. 물론 학생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없게 잘 전달하는 것도 교수의 역할이겠지만, 일반인과는 달리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학문적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환자분들의 입장과 인권을 더욱 존중하면서 성실히 진료와 교육에 임하겠습니다.
1. 강의 전반에 대한 설명
제 강의를 들은 2학년 학생들은 아직 임상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들입니다. 전혀 정신과 환자를 접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정신질환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과 정신병리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가급적 예을 들어 설명하기로 하였고, 가능하다면 실제 예를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정신과 환자의 증상(정신병리)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글이나 말로 된 표현으로는 정신병리를 이해하기 어렵고 정신질환 환자의 증상을 교육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직접 실연(實演)해서 보여주기로 하였습니다. 비디오로 정신병리나 언행을 찍어놓은 것이 있으면 교육에 도움이 되겠지만, 환자 개인정보 보호나 인권 보호 등과 관련하여 실제 환자의 비디오 클립을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정신과 강의에서는 부득이 교수가 증상을 실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2. 전기(경련)치료와 관련된 내용
정신과 치료법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이름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를 주긴 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효과가 빠르고 안전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금년에 실제로 병동에 입원하여 전기(경련)치료를 받고 극적으로 좋아진 환자분이 있어서 그 사례를 들기로 하였습니다.
이 환자는 이미 다른 병원에서 오랫동안 고용량의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의 호전이 없어서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전원되었고, 약물을 변경해도 효과가 없어서 특히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의 밤새 소리를 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왔다갔다 아주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빠른 치료 효과가 필요해서 보호자와 환자의 동의를 얻어 전기(경련)치료를 시행하였고, 다행히 아주 빨리 호전되었습니다.
전기(경련)치료가 안전하고 빠른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치료 전과 치료 후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보인 실제 모습을 재연한 것이지,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지도 않았고, 학생들도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코 비하한 적도 없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제가 과장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고 느꼈을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제 환자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3. 환자 증상 관련해서 “재미없게끔”이라는 표현
정신과 환자들의 증상은 워낙 다양하게 표현이 되어 교과서적으로만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시대가 달라지면서 환자들의 증상의 표현도 달라지고 있고, 교과서에 있는 내용 그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점을 설명하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반적으로 조증은 기분이 많이 들뜨고 말도 많고 행동도 부산해집니다. 기분에도 전염성이 있어서 심한 환자 한두 명만 입원해도 다른 환자, 간호사, 의사, 실습 학생 등 병실 내 모두가 영향을 받아서 즐거워하고 들뜨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환자들이 꽤 있어서 실습 나온 학생들도 즐거워하고 재미있게 실습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비교적 일찍 발견되고 또 치료도 일찍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사람까지 즐겁게 느끼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금년에 입원하였던 한 조울증 환자는 과거력이나 다른 증상으로 미루어서는 틀림없이 조증인데, 아예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경우였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실습 나오면 이전과 비교해서는) 재미없게끔"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만, 제가 직접 그런 단어를 사용하였는지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환자의 증상을 재미있다, 재미없다로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4. 군대 내 폭력 관련 '환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발언
정신과 강의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아직 일반인과 같은 질병 인식을 가진 학생들에게 전문가적인 시각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정신질환에 가진 인식을 소개하고, 의학적으로 볼 때 꼭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설명이 뒤따르는데,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정신과 발병 원인과 관련하여 “생물학적 소인”과 “외부 환경 등에 의한 유인”을 구분하고, 그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환자나 보호자 분들은 "실연을 당해서, 혹은 대학시험에 떨어져서 우울하다"고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데, 진찰해 보면 이미 우울했기 때문에 기능이 떨어지고 집중을 못해서 실연을 하거나 대학시험에 실패한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군대도 그렇습니다. 군대 가서 맞아서 우울해졌다 라고 보호자분들은 말씀하시지만, 물론 실제로 그런 경우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미 우울해 있었기 때문에 군대에 잘 적응을 못하고 (그러면 안 되지만) 맞게 되거나 폭력의 희생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엔 있던 우울증이 더 악화되기도 합니다.
강의 내용은 보호자분들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과 발병 원인에 대한 오해 등을 일반인들의 표현대로 설명하고, 의학적 입장에서 볼 때 정신질환 발병에는 생물학적 소인과 환경적 유인이 작용하므로, 환자나 보호자의 설명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하지 말고, 전후관계를 잘 살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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