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예인 가족이 견뎌야 할 금수저의 무게

[기획] 연예인 가족이 견뎌야 할 금수저의 무게

기사승인 2017-08-07 05:00:00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장면 하나. 성인이 된 딸과 아버지 단둘이 하루 동안 시간을 보낸다. 둘 사이를 이어주던 어머니의 빈 공간을 어색함이 채운다. 침묵을 깨기 위해 괜히 말을 걸어보지만, 대화는 금방 중단된다. 부녀는 억지로라도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점점 가까워진다. 이 두 사람은 유명 연예인과 그의 딸이다. 평범한 대학생인 줄 알았던 딸은 알고 보니 연기를 전공하는 배우 지망생이다. 딸은 갑자기 한 웹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다. 그녀는 이후에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수식어로 배우 활동을 이어가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장면 둘. 아이돌을 꿈꾸는 소녀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들은 기획사 소속 연습생이 아닌 일반인 지망생들이다. 대부분 모르는 사이인 소녀들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낯을 가리기도 하고 경계하기도 한다. 각자의 사연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그녀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곧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 소녀가 유명 연예인의 딸이란 사실이 밝혀지자 분위기가 바뀐다. 닮았다는 말과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교차한다. 누군가의 딸이란 타이틀이 곧 저 소녀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SBS ‘아빠를 부탁해’와 현재 방송 중인 Mnet ‘아이돌학교’의 한 장면이다. 연예인의 가족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방송 활동을 시작한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다.

배우 조재현의 딸 조혜정은 연예인 금수저 논란을 최초로 일으킨 장본인이다. 조혜정은 아버지인 조재현과 함께 2015년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방송이 종료된 후 그녀는 온스타일 드라마 ‘상상고양이’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돼 유승호와 호흡을 맞췄다. 이후에도 tvN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MBC ‘역도요정 김복주’ 등에 조연으로 캐스팅되며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가수 김흥국의 딸 김주현은 연예인의 가족이 곧 경쟁력이라는 걸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김주현은 지난달 13일 첫 방송된 ‘아이돌학교’에 출연해 40명의 학생들과 아이돌 데뷔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량을 확보해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김주현은 김흥국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 인지도가 높을수록 살아남기에 유리한 프로그램의 특성상 연예인 2세라는 타이틀이 곧 그녀의 실력이었다. 이후 김주현은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음에도 첫 시청자 평가에서 31위를 기록하며 8명의 탈락자 명단에 포함되는 걸 피했다.

연예인 가족 예능은 현재 방송가에서 가장 유행하는 장르 중 하나다. SBS ‘미운우리새끼’, ‘자기야-백년손님’,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싱글 와이프’,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tvN ‘둥지탈출’, JTBC ‘효리네 민박’, E채널 ‘내 딸의 남자들’ 등 방송 중인 프로그램 수만 10여개에 달한다. 과거엔 연예인 2세를 주인공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부모님, 부인, 남편까지 가족의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연예인 가족의 방송 출연이 처음부터 대중의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킨 건 아니었다. 과거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MC 그리)이 KBS2 ‘도전 골든벨’에 출연하거나, 이경규의 딸 이예림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대중들은 자신의 자녀가 TV에 나온 것처럼 환호했다. 오히려 연예인들이 가족의 방송 출연을 꺼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언론에 노출된 연예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을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MBC ‘아빠! 어디가?’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가수 윤민수 아들의 윤후를 비판하는 안티 카페가 생겨 논란을 일어난 적도 있다. 방송인 박명수는 MBC ‘무한도전’에서 자신의 아내 이야기를 꺼내는 멤버들에게 “가족은 건드리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아빠! 어디가?’,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큰 인기를 얻고 윤후, 추사랑 등의 연예인 2세 스타가 탄생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방송국 PD들은 연예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새 프로그램을 줄줄이 제작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거부감도 줄어들어 이제는 자발적으로 가족의 출연을 제안할 정도다. 가족의 방송 출연을 극구 거부했던 박명수가 최근 아내 한수민과 함께 ‘싱글 와이프’에 모습을 드러낸 건 분위기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례다.

하지만 연예인 가족의 예능 출연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차갑다. 핵심은 공정성이다.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방송 출연은 꿈같은 일이다. 많은 시간 동안 실력을 쌓아서 데뷔를 한다 해도 방송 출연 기회를 잡지 못해 사라지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연예인 가족이라는 핏줄을 이용해 쉽게 방송에 출연하고, 방송 경험으로 높아진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해 개인적인 수익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을 향해 일종의 ‘연예인 권력 세습’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젊은 세대의 취업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현 시점에 금수저 부모를 만나 부당한 방법으로 쉽게 취직해서 편하게 사는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과 같다.

국회의원 자녀들의 방송 출연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금수저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연예인 2세처럼 국회의원의 2세라는 타이틀이 이들의 방송 활동을 수월하게 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 장용준은 Mnet ‘고등래퍼’, ‘쇼미더머니6’에 출연했고,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아들 기대명은 현재 tvN ‘둥지탈출’에 출연 중이다. 배우로 활동 중인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의 아들 고윤은 현재 tvN ‘크리미널마인드’에 출연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연예인 가족 예능이 만들어질 때마다 거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연예인 가족 예능은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부정적인 시선과 관계없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는 시청률 16.1%(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대표적인 주말 예능으로 순항 중이다. 지난 2일 첫 방송된 ‘싱글 와이프’는 MBC ‘라디오스타’와 맞대결에도 5.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이처럼 좋은 결과는 방송사가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가족 예능을 기획할 근거가 된다.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연기과 이호규 교수는 “가족이 해체되고 먹고 사는 것이 급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 예능은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다시 깨닫게 하고 있다”며 “인공적인 것 대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요즘 시청자들의 입맛에도 맞는다. 또 박명수나 이효리처럼 강인해 보이는 연예인들의 힘든 속사정에 공감하며 카타르시르를 느끼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정 연예인 뿐 아니라 그 연예인의 가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며 “가족 예능의 트렌드는 적어도 올해까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예인 가족 예능은 앞으로도 계속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에 출연해 인지도 상승을 노리는 연예인 가족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자신의 진정성을 대중에게 전하기까지는 일반인들보다 훨씬 어렵고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다. 쉽게 얻은 방송 출연 기회와 반비례하는 금수저의 무게를 그들은 감당할 수 있을까.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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