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내로남불(아전인수 태도를 꼬집는 신조어)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상식적인 일들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 박기영 순천대 교수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 사실이 알려지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차관급 인사인 만큼 별도의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다. 무사통과다. 박 교수 영입에 대한 청와대의 변은 극찬과 다름없다. “식물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서 탄탄한 이론적 기반과 다양한 실무경험을 겸비하여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핵심과학기술 연구 개발 지원 및 과학기술분야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적임자.”
과학계와 언론계는 우려와 좌절, 비판이 혼재된 양상이다. 박 교수의 전적 때문이다. 과거 청와대과학기술보좌관 재직시 박 교수는 ‘황우석 설계자’와 ‘황금박쥐’ 등으로 불리며 논문조작 사태와 직접 연루됐던 인물이다. 박 교수는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황우석 사태와 관련,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과학계 인사들이 걱정하는 이유다.
우희종 서울대수의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쳤다”며 강한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우 교수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과 관련된 사람들은 반성하고 책임 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면서 “박 교수는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의 ‘연출자’ 중 주역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그가 다시 한국 과학계의 최고 정책 위치에 선다는 것은 황우석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우석 사태는 과학자 집단의 신뢰를 무너뜨린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국제적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 핵심에 있던 사람들이 반성하고 책임질 것이라 믿어왔던게 깨졌다”고 개탄했다.
영화 <제보자>의 실제 모델인 한학수 MBC 전 PD수첩 피디는 “(박 교수의) 인사는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피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우려를 넘어 씁쓸함마저 느껴진다.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일원으로 황우석 교수를 적극적으로 비호했던 인물.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었어야할 임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더 진실을 가려 참여정부의 몰락에 일조했던 인물. 나는 왜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인물을 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과학계의 슬픔이며, 피땀 흘려 분투하는 이공계의 연구자들에게 재앙이다.”
◇“박기영 없인 황우석도 없었다”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에 대한 검증대신 맹목적 지지를 보였다.” 박기영 교수에 대한 박건식 MBC 전 PD수첩 피디의 설명이다. 박 피디는 당시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설계자’에 빗댔다. “과학정책을 좌우하는 위치는 냉철함과 합리적 판단이 요구된다. 당시 박 보좌관의 모습이란, 황우석 박사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후원에 가까웠다. 그렇게 박 보좌관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았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이 2004년 사이언스지에 게재될 때, 박 교수는 공저자로 논문에 이름이 올렸다. 컨설팅 명목으로 이름을 올린 사례는 전무하다. 전공분야가 달라 사실상 박 교수의 연구기여도는 ‘0’에 가깝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위 ‘논문 무임승차’를 차치하더라도 박 보좌관의 ‘역할론’은 별개의 문제다. 당시 그는 연구 예산 집행에서 해당 논문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검증해야하는 자리였다. 박건식 피디는 ‘거래’였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박 피디는 “국가예산을 지원해주고 본인은 세계적인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거래다. 박 교수는 국가예산을 남용했다”고 꼬집었다. 본인이 공저자인데 신뢰성 있는 검증이 가능했겠냐는 말이다.
박기영 교수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줄기세포 연구자들에 대한 철저한 견제가 그것이다. 박 피디의 증언이다. “사실상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 한 명만 할 수 있도록 했다. 차병원과 성모병원 등 앞선 연구자들이 있음에도 황우석 이외에는 배제시켰다.”
2005년 11월 27일 노 전 대통령은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을 쓴다. 해당 글로 인해 PD수첩은 존폐위기로까지 치닫게 된다. 박 피디는 노 전 대통령이 줄기세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공개적인 글을 쓰기까지 박 교수의 ‘역할’이 상당했으리라 추정했다.
“(중략) 얼마 후부터는 난자 기증을 둘러싼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며칠 후, 과학기술보좌관이 MBC PD수첩에서 난자기증문제를 취재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연구원들이 고통과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면서 무슨 대책을 의논해 왔다. 이 자리에서는 취재의 동기와 방법에 관하여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호의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후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브리핑 기고 중 일부. 거론되는 ‘과학기술보좌관’은 박기영 교수이다.)
이에 앞서 2005년 10월 19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임상연구소에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이 열린다. 당시 노 전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오명 부총리, 정운찬 서울대총장,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황우석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 윌머트 로슬린연구소 박사 등이 참석했다. 세계줄기세포허브는 말 그대로 ‘황우석 월드’였다. 개소식에서 노 전 대통령은 황우석 박사와 20여분 동안 독대후 “나는 황우석 교수에게 감전됐다”고 극찬했다.
박 피디는 “조작된 거짓 논문을 기반으로 황우석만의 연구동이 만들어졌고, 노 전 대통령도 잘못된 정보에 현혹됐다. 박기영 교수는 황우석 현상과 줄기세포 환상을 설계했다. 쉽게 말해 ‘주가조작’의 양상처럼 흘러갔다고 보면 된다. 그러는 사이 정작 실력 있는 연구자들은 소외됐다. 의학자들이 수의학자인 황 교수를 핍박하는 프레임을 만들어, 의학 분야의 줄기세포 연구는 추락했다”고 꼬집었다.
◇왜 하필 文은 박기영을…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임명될 수 있는지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우희종 서울대수의대 교수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우 교수는 박기영 교수를 두고 “정치력이 있을 뿐 과학정책 능력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학정책은 과학 윤리에 기반을 해야한다. 박 교수는 그러나 황우석 사태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철저한 사과와 쇄신, 반성의 행동이 전제됐다면 모를까. 박기영 교수는 자성 없이 정치권에 기웃거려 자릴 얻었다.”
이렇듯 인선 하루 만에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과거의 철학이 새 정부와 배치되지 않는 한 결정적 하자가 될 수 없는 게 일반적”이며 “이 문제에 대해 본인이 어떤 입장을 표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박기영 교수의 여러 ‘약점’을 청와대도 인지했을 터다. 탁현민 행정관의 경우와 유사하다. 흠이 있어도 장점만 확실하면 ‘쓴다’는 기조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테면 과학기술의 예산 집행과 관련한, 행정능력을 높이 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곧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인력 풀이 극히 협소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박건식 피디는 “아마추어리즘의 재등장”이라고 평가했다. 박 피디는 “자문을 받고 찾았다면 적당한 인재가 있었을 텐데, ‘눈에 걸리는’ 사람으로 추천을 받은 게 아닐까. ‘초반에는 욕을 먹겠지만 돌파하면 된다. 박기영이 큰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나’라는 인식 말이다”라고 분석했다.
◇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기억해야 할 것
박건식 피디는
“당시 재활환자들에게 줄기세포는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재활을 포기하고 황우석의 줄기세포만 기다렸다.
황우석의 사람들, 황우석의 설계자. 끝내 사과하지 않은 충성스런 황의 사생팬. 여러 우려에도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분배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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