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부산 기장군 장안읍 좌동리에 위치한 중입자치료센터. ‘꿈의 암치료기’로 불리는 중입자가속기센터를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기관 사이의 복잡한 속내가 관찰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 이하 과기부) 산하 한국원자력의학원(원장 최창운, 이하 의학원)이 당초 역점을 두고 추진한 이 사업은 좌초를 거듭했다. 결국 과기부는 올 초 서울대병원(원장 서창석)을 우선협상자로 삼아 센터 운영을 협의하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2차 운영 병원 공모에 관심을 보였지만, 서울아산병원이 손을 떼 사실상 서울대병원이 추후 센터를 운영하는 것으로 다수 언론이 보도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의 속내는 복잡한 것처럼 보인다. 본지는 수차례 협상 과정과 운영 여부를 문의한 끝에 병원 내부 실무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당초 2차 병원 공모 조건에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10년 위탁 운영 조건이 포함됐지만, 노동조합의 반대로 철회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병원 실무자 o씨의 말은 언론보도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위탁운영 조건이) 아직 빠진 건 아니”라면서도 “적자가 심한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운영은 그러나 서울대병원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말해 선을 긋는 듯 한 제스처를 보였다.
그는 또한 “과기부와 기장군은 서울대병원이 이 사업을 맡아서 추진하길 바라고 있다. 그 때문에 밀어붙이고 있다. 과기부는 기획재정부가 이 사업을 계속 ‘밀어주길’ 원한다”고도 귀띔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제기된다. 서울대병원은 중입자가속기센터를 운영하게 될까? A씨는 ‘노’라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았다. 반면 과기부의 입장은 좀 다르다. 다음은 해당 사업의 과기부 실무자의 말이다. “서울대병원·원자력의학원·과기부·부산시·기장군 사이에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 이사회와 국정감사전에 업무협약을 맺을 작정이다.”
서울대병원의 주요결정 사항은 이사회 의결에 따른다. 과기부 관계자 말대로라면 이사회 전에 사업 참여를 공식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고위 관계자도 “그런 의도로 읽힌다”며 난처하다는 듯 한 뉘앙스를 비쳤다.
이렇듯 과기부와 서울대병원 사이의 ‘동상이몽’에 대해 김쌍우 부산시의원(바른정당)은 “과기부는 병원들에게 중입자가속기 사업 참여를 ‘종용’했다”며 “지역병원들과는 협의 채널이 많지 않았고, 정책 방향도 동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서울대병원은 많은 지원을 받아내려하고 (과기부와) 기재부는 ‘적당한’ 지원을 검토하는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앓는 소리’를 한다지만, 실상은 서로 눈치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원자력의학원, 겉은 잠잠 속은 부글부글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노조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다. 보건의료노조 동남권원자력의학원지회 관계자는 “초기 사업을 진행한 원자력의학원 집행부와 과기부의 책임은 있지만, 원자력의학원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본다”면서 “서울대병원이 중입자가속기를 가져가면 원자력의학원은 과연 발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우려했다.
해당 관계자는 “지역주민들은 서울대병원이 온다면 좋아하겠지만, 직원들의 사기는 저하될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빅5 병원이 의료계를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 중입자가속기를 둘러싸고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대결형태로 가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지적은 작금의 의료 양극화 상황을 고려하면 일순 타당한 지적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과기부와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속내는 어떨까? 지근거리에서 사업 진행을 바라본 김쌍우 의원은 각자의 복잡한 속내가 감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서울대병원의 중입자가속기센터 운영을 내심 반대한다. 그들이 갖고 있던 기관의 운영권을 넘기는 데 불만을 갖는 것이다. 과기부의 지원으로 사업을 재개하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기부는 한국원자력의학원을 불신하고 있다.”
이 말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과기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곧 서울대병원과 MOU를 맺으면 더 이상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주관기관이 아니게 된다.”
이렇듯 각 기관의 눈치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꿈의 암치료기’는 그저 꿈으로만 남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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