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6시께(현지시각)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주(라까잉 주) 라띠동 타운쉽. 로힝야 거주민 시디끄(가명)는 열흘 가까이 소식을 몰랐던 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23살인 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다가 “지금 나프강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나프강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가르는 국경 강이다. 구획에 따라 배로 한 시간 혹은 덜 걸리기도 한다. 이 강은 수십 년 동안 안전한 곳에 발을 딛고자 몸부림치는 로힝야의 피난로였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이 피난 와중에 물에 빠져 죽었으며, 일부는 시체로 떠올랐다. 최근 이 강변은 미얀마의 로힝야 인종청소를 피해 탈출하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남편, 갓 돌을 지난 아이와 함께 피난길에 나선 딸은 “모든 사람들이 울고 있다”고 전했다.
“나프강은 지금 비통한 강이 되고 있어.” 시디끄의 문자메시지는 비통하게 울먹이고 있었다.
◇ ‘비통한 강’ 인산인해
시디끄의 딸이 열흘 넘게 소식이 끊긴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딸의 가족은 라띠동 타운쉽 샨 칼리(Chein Khar Li) 마을 내의 ‘샨칼리 피난민 캠프’(2012년 폭력 사태로 피난한 사람들의 거주캠프)에 살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오전 미얀마 국경경찰(BGP)과 무장한 라까잉족 불교도 자경단이 이곳에 들이닥쳐 불을 질러 샨칼리 전역이 불에 탔다.
방화는 이날 새벽 로힝야 무장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군경 초소 30곳을 공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졌다. ARSA가 공격한 초소 30곳 중 하나가 샨칼리 마을에 있었다. 이 공격을 제외하면 이 일대에서 반군활동이 포착된 적은 없었다. 마을 방화가 반군의 경찰 초소 공격에 대한 보복인지 아니면 미리 준비된 공격인지 헷갈릴 만큼 국경경찰과 자경단의 공격은 일사 분란했다. 그들은 반군과는 무관한 민간인과 피난민의 거주지를 모조리 불태웠다.
샨칼리 방화는 2일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발표한 위성사진 보고서의 17곳 사례 중 하나다. 보고서는 샨 칼리 마을 700 가옥이 불탔으며, 이 마을의 97%가 전소됐다고 전했다. 수천 명의 마을주민들은 맨몸으로 인근 산에 피신했다. 그리고 시디끄의 딸 가족도 그 행렬에 있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1시30분께부터 보안군과 불교도 자경단은 라띠동 타운쉽의 제디퓐(Zedi Pyin) 마을도 불태웠다. 제디퓐은 반군의 공격을 받은 곳이 아니다. 이 마을의 로힝야 촌락은 이미 7월 말부터(공식적으로는 8월 초부터) 군과 라까잉족 자경단에 의해 봉쇄됐다. 3주 가까이 생계와 식량 차단으로 굶주려야 했던 마을주민들은 잿더미로 변한 거주지를 뒤로하고 약 4마일(6.5km) 떨어진 친 요와 마을로 급히 피신했다.
각 마을에서 생존해 피신한 이들이 점점 정글로 모여들어 수 만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일부는 아직도 정글에서 식량 없이 숨어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일부는 무작정 동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시디끄의 딸이 속한 무리는 열흘을 넘겨서 겨우 국경강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일을 굶주린 채 걸어 피난한 이들은 현재 방글라데시로 끝없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 보안군·불교도 자경단 공격에 정글로 숨어든 주민들
그동안 라띠동 타운쉽은 로힝야들의 주 거주지로 알려진 마웅도 및 부띠동 타운쉽과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로힝야 반군 활동도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이 지역은 다른 두 타운쉽과 달리 라까잉족 인구가 많아 유사시에는 자경단 형태의 조직적 불교 극단주의 폭력이 발생 가능한 위험한 구성이기도 하다. 7월 말부터 시작된 제디퓐 마을 봉쇄와 8월 들어 군의 로힝야 주민 체포와 구타·고문·실종까지 이 지역에서의 로힝야에 대한 린치는 계속 고조됐다. 그리고 25일 대부분 마웅도(방글라데시 국경 인접) 지역에 집중된 반군 공격이 일어나자, 라띠동 지역은 기다렸다는 듯이 불타올랐다.
마을들을 방화하고 주민들을 살해한 후 일부 시체를 태우는 게 현재 미얀마 당국의 소위 ‘대반군 작전’의 패턴이다. 로힝야 문제를 조사해 온 <아라칸 프로젝트>의 크리스 리와 국장은 이 패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불을 지르고, 총격으로 상황을 제압한 뒤 (일부 시체를 포함해) 주민들을 체포하는 순서.” <아라칸 프로젝트>는 군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태웠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취재진과 구호인력 등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작전’이란 명목으로 자행되는 학살이 곳곳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명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지난달 27일 발생한 춧퓐(Chut Pyin) 마을학살이다.
라띠동 타운쉽에 위치한 춧퓐 마을은 반군 활동이 포착되지도, 공격을 받은 적도 없다. 27일 오후 2시께 국경경찰(BGP) 100여명과 불교도 자경단원 80명 가량은 마을이 들이닥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웃 마을 거주민 무하마드(가명)가 28일 오전 9시께 춧퓐 마을에 도착했을 때, 주민들은 최소 20구의 참혹하게 훼손된 시체를 땅에 묻고 있었다. 무하마드가 춧퓐 마을 주민들을 통해 파악한 사망자는 ▶성인 남녀 각기 70명·31명 ▶남녀 어린이 각각 29명·22명 등 총 152명이다.
또한 최소 95명이 부상당했으며 100명 이상이 실종 상태다. 국제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는 1일 성명을 통해 춧퓐 학살을 비중 있게 전했다. 성명은 학살이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벌어졌다고 밝혔다. 6살, 9살 어린이까지 참수 당했다는 게 포티파이 라이츠가 인용한 목격자의 증언이다.
“군은 많은 수의 로힝야 남성들을 체포한 뒤 인근 대나무 오두막 지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 ‘포티파이 라이츠’는 1400명의 마을주민 중 생존이 확인된 사람들은 596명이며, 확인된 사망자만 20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방화·총살·참수·산채로 불 질러… 어린이까지 참수 당했다는 증언도
지난달 25일 반군 공격을 기점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미얀마의 로힝야 인종학살은 현재 제노사이드(Genocide) 논란을 재점화시키고 있다. 2주 동안 27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고, 수만 명이 정글로 도피, 피난민으로 전락했다. 미얀마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사망자는 2일 기준 400명 수준이다. 그러나 로힝야 망명 언론은 4일 기준 3000명에 이를 것으로 봤다.
“종족, 민족, 인종 혹은 특정 종교집단에 속한 이들을 전체 혹은 부분 고의적으로 말살하는 행위.” 1948년 유엔(UN)이 채택한 제노사이드 협약(Genocide Convention)은 제노사이드를 이 같이 정의했다. 그동안 국제인권 및 법률 전문가와 언론인들 사이에서 로힝야족 제노사이드 논쟁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고의성’(intention)의 문제다. 과연 미얀마 당국 특히 미얀마 군이 로힝야족을 말살할 ‘의도’를 갖고 있는지에 질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미얀마 군 최고 사령관 민 아웅 라잉의 최근 발언이 주목받았다. 그는 군과 공무원, 불교도 피난민(약 1만5000명) 일부가 모인 자리에서 “벵갈리(로힝야 비하 호칭) 문제는 오랫동안 질질 끌며 끝내지 못한 과제였다”고 말했다. 지금의 학살에 로힝야 말살 ‘의도’가 반영됐을 해석을 남겨둔 발언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대량살상에는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제노사이드를 현재형으로 논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었다. 영국 런던 퀸메리대학의 ‘국가범죄에 관한 국제연구소’(International State Crime Initiative)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와 관련 컨퍼런스를 통해 40여 년 동안 로힝야들이 직면해온 박해상황은 제노사이드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분석한 바 있다. ▶낙인찍기(stigmatization) ▶학대(harassment) ▶고립(Isolation) ▶체계적으로 무력화시키기(Systematic Weakening) 등 4단계에는 이미 도달했지만, 마지막 단계인 ‘대량절멸’(Mass annihilation) 단계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분석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진행 상황은 전문가들의 논의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호주
방송은 6일 미국 예일대 제노사이드 연구소의 데이비드 사이몬의 견해를 인용해 로힝야 사태를 보도했다. “현재 제노사이드라 부르는데 주저하는 건 증거 때문”이며 “(증거만 수집되면) 제노사이드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또한 UN 제노사이드 방지 특별 자문관인 아다마 디엥(Adama Dieng)도 현재의 사태는 집단살해의 전조라고 경고했다. “당장 제노사이드에 직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를 방지하려면 지금 행동해야 한다.”
◇ 반군 공격, 활동 없는 곳도 대량학살 목격돼
이런 가운데 아라칸 주에서 아직 불타지 않은 마을의 로힝야 거주민들은 극단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마웅도 북부 우쉰쨔(U Shin Kya) 마을의 살림(가명)은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마을 주변에 어떠한 조짐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 월요일 ‘웅아 쿠 라’(Nga Khu Ra) 마을, 화요일에는 ‘라 동 샤웅’(Ra Duang Shaung) 마을 등 불과 2마일 가량 떨어져 있는 인근 마을들이 불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난민캠프에 5년째 ‘갇혀’있는 로힝야 난민 안와르(가명)는 부띠동 타운쉽에 있는 양친을 걱정하고 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그의 부친은 “사랑하는 아들아, 미얀마 군이 언제 올지 모르겠구나.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렴”이라고 말한다.
방글라데시로 피난길에 오른 딸을 염려해 “죽고 싶은 심정”이라던 라띠동 타운쉽의 시디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5일 “라띠동 마을 5곳이 불탔다”며 소식을 전하던 그의 염려는 안와르의 부친과 같았다. “보안군과 불교도 자경단이 언제 마을에 들이닥쳐서 총을 쏘고 불태울지 몰라.”
7일 친요와 마을 주민들 일부는 피난길에 올랐지만, 보안군이 막아 마을로 되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 미얀마 내에는 여전히 40만 내외의 주민들이 갇혀 있다.
태국 방콕=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