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병원(병원장 송민호)이 성추문에 휩싸였다. 현재까지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만 4명이다. 이번 사태는 간호사 3명과 여직원 1명이 지난달 23일 병원 성희롱고충신고상담원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이들은 성형외과의 ㄱ교수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적 발언과 불필요한 신체접촉에 시달려왔다고 주장했다.
진정서가 제출되자 병원은 지난 1일 ㄱ교수에게 직무정지 명령을 내렸다.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접촉을 차단키 위한 조치였다. 현재 ㄱ교수는 연구실로 출근은 하지만 진료는 하지 않는다는 게 병원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ㄱ교수는 병원 조사에서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ㄱ교수에 대한 직무정지는 병원에서 사건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13일 병원 특별인사위원회는 그간 법무지원팀의 조사 결과와 함께 가해자와 피해자,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이르면 15일 늦어도 18일에는 조사 결과 및 징계 수위 등이 발표된다. ㄱ교수가 교육부 교수 신분인 터라, 이후 충남대 대학본부에서 징계를 결정·통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ㄱ교수도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는 게 복수의 병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번 충남대 병원 성형외과의 성추문 사태의 해결은 간단치 않다. 병원 진료과의 특성상 목격자를 찾기 어렵고, 현재로선 피해자들의 증언이 전부인 상황이다. 설사 목격자가 있다하더라도 피해자 편에 서서 증언을 할 사람은 전무한 실정이다. 실제로 진상조사를 진행한 병원 법무지원팀의 한 관계자는 참고인 조사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의 장소는 진료실과 수술실로, 진료실에는 ㄱ교수와 간호사 두 명만 들어가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다. 이 때문에 최대한 참고인 조사를 통해 평소 ㄱ교수의 언행을 파악하고 있다. 참고인들은 (ㄱ교수의 언행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꺼렸다. 간호직을 포함해 의사직도 확인을 하고 있지만, 피해 내용을 정확하게 목격했다는 참고인은 거의 없다.”
병원의 구조상 목격자가 없는 사각지대에 일어난 이번 사태는 예고된 불상사다. 해당 관계자의 진술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또 있다. 참고인으로 조사에 응한 병원 관계자들이 평소 ㄱ교수의 언행에 다분히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들이 침묵하는 이유다. 전임과장이자 중진교수인 ㄱ교수의 위치와 신분을 고려하면, ‘찍히고 싶지 않다’는 정서가 공유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피해에 대한 규명도 녹록치 않다. 법무지원팀 관계자는 “피해자가 여러 명이고 피해 내용은 유사하지만, 피해자들의 근무지와 근무내용이 상이한 탓에 진상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복수의 병원 관계자들은 피해 내용에 대해 ‘성적 표현이나 농담, 신체접촉’이라고 귀띔했다. ‘일상화된 피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를 실체적 진실로 규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이는 곧 ㄱ교수에 대한 징계 수위로 직결된다.
피해자들이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에도 문제제기는 있었다. 지난 6월 중순경 피해자들은 충남대병원 성형외과에 평소 ㄱ교수로부터 성희롱적 발언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의사표현이있었던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당시 성형외과는 외래·수술·회진을 ㄱ교수 대신 다른 사람으로 대체했고, ㄱ교수에게는 서약서를 요구했다. ㄱ교수는 서약서를 통해 본인의 잘못 인정과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서약서 제출 후 ㄱ교수는 다시 업무에 복귀, 피해자들과 대면했다.
문제는 6월 중순 이후부터 진정서가 제출된 8월 23일까지의 기간 동안에도 ‘부적절한 언행’이 지속됐다는 점이다. 이 기간에도 ㄱ교수의 언행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병원 조사 담당자는 전했다. “6월 이후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대화도중 팔을 잡는 행동 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상시적·일상화된 피해는 여전했던 것이다.
최재홍 보건의료노조 충남대병원지부장은 “심각한 문제인 만큼 정확한 조사와 처벌, 피해자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지부장은 또한 “법무지원팀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충분한 인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 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다고 밝히더라”고 말했다.
◇ “제지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쿠키뉴스는 현 성형외과장에게 이번 사태의 전후 상황을 물었다. 해당 책임자는 6월 과 차원의 대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내부 구성원의 관리를 못한 책임이 있다”며 “병원 특별인사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면 과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성형외과장과의 일문일답.
-피해자들은 6월 중순경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과에 알렸다. 성형외과 차원의 나름의 조치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미흡했던 게 아닐까.
“성형외과 차원에서의 조치였다. ㄱ교수와 피해자들 간의 업무 분리를 한다고는 했는데 한계가 있었다. 나도 징계 등의 권한은 갖고 있질 않다. 이들이 접촉하지 않도록 수술과 외래를 분리시키는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였다. (ㄱ교수가) 서약서를 썼기 때문에 일단은 그의 말을 믿었다.”
-ㄱ교수가 작성한 서약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나.
“(본인이 피해자들에게) 했던 것을 인정하고 재발방지, 사과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현재 ㄱ교수는 서약서를 쓴 이후의 언행을 인정하고 있나.
“8월말부터 병원에 정식으로 민원이 제기되었고 현재는 병원에서 조사를 진행 중인 상태이다. 인정, 불인정은 파악하지 못했다.”
-ㄱ교수가 과내 중진 교수인 만큼 최초 과내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 않았나.
“그렇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 과내에서의 대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책임자로서 내 권한도 마찬가지다. 거꾸로 후배가 했어도 어떤 제지를 할 수 있는 역할을 갖고 있진 못하다.”
-피해자가 이번에 알려진 4명 이상일 수 있지 않나.
“현재 과의 전공의들은 남자들만 있어서 전공의 사이에선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다. 향후 학교 조사에 따라 진상이 나오게 될 것이다.”
-참고인 조사시 타 참고인들은 말하길 꺼려했다. ㄱ교수와 관련된 구설은 3월 전에는 없었는가. 간호사·지도학생·아래 교수들 사이에서 말이다.
“3월 이전의 일은 나도 알지 못한다. 문제가 수면위로 조금씩 올라와서 6월에 대처를 하게 된 것이다. 무지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지를 하지 못한 게 굳이 감추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다.”
-과내에서 ㄱ교수의 평가는 어떠했나.
“이런 것 말고는 엄격한 스타일이 아니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 정상 범위 내에서 엄하거나 전공의들이 힘들어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ㄱ교수와 관련해 간호사들 사이의 평판은 어떤가.
“확인이 어렵다. 따로 말이 나온 건 없었다.”
-과 차원에서 사과 등 입장 표명을 할 예정인가.
“이번 사태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내부 구성원의 관리를 못한 책임도 있다고 본다. 병원 특별인사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면 과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
◇ 재발 방지, 가능할까?
충남대병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쿠키뉴스에 다음의 재발방지책을 약속했다. 방지책은 ▶사건을 병원 내 구성원에게 전파·공유 ▶노사 공동의 성희롱 근절 캠페인 ▶10월 성희롱 예방교육 집체교육 ▶성희롱 고충 상담원 확대 지정. 현 2명→향후5~6명 ▶교수 회의시 관련 사례 전파 교육 ▶전 직원 성희롱 예방 근절 결의대회 등이다.
확실히 ‘털고 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병원내 폭력 및 성추행 등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면 다수의 병원들은 내부 조사가 이뤄지긴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데 그쳐 병원의 사태해결 의지에 의문이 제기되곤 했다. 심지어 가해자-피해자들 사이의 업무 분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를 미뤄볼 때 충남대병원이 나름대로 사태 해결 의지가 있음은 유추가 가능하다. 세종충남대병원 건립이라는 병원 최대 사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송민호 병원장의 입장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최재홍 지부장은 송 원장이 “원리원칙대로 조사를 할 것이며 축소 및 은폐는 없다”고 밝혔다고 기자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이번 성추문 사건은, 그러나 피해 사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징계로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사례에서 피해자들은 기자에게 “병원도 한통속”이라며 울화통을 터뜨리며 법에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ㄱ교수 개인의 일탈과 함께 병원이 지닌 구조적 결함의 탓도 크다. 피해자들이 최초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확실한 조치가 이뤄졌다면, 피해자들의 심적 고통은 다소 줄어들 수 있었다. 지방국립대병원에서 벌어진 이번 성추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충남대병원은 대전·충남 지역민들에게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수도,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