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의료기길 넘보지 말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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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법안 둘러싼 갈등의 골… 기동훈 대전협 비대위원장 인터뷰

기사승인 2017-09-14 04:00:00


‘첨예하다’는 갈등이나 대립 등이 날카롭고 과격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의미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의료계와 한의계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라고 말이다. 

반목의 역사는 길다. 법적 공방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에도 의료 및 한의계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법안이 시발점이 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이다. 각각의 이해와 관점이 상이해 꼬인 실타래마냥 해결책도 요원해 보인다. 

13일 국회 정문에는 검은 양복 차림의, 그러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기동훈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사진)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그는 전날 밤을 새웠다고 했다. 그의 곁에는 의료전문매체 기자 한명이 서성이며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눠보자고 했던 게 어찌하다 보니 인터뷰의 형태가 돼 버렸다. 미니 인터뷰 말미 통합진료나 ‘사이좋은 협진’의 가능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양·한방 협진을 보면, 한방 쪽에서 협진을 많이 하려고 하지 양방에서는, 아니 양방이 아니죠. 현대의학에서 한방에 협진을 요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이 말은 꽤 인상적이었다. 인식차의 정도가 어떠한지가 상징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부 비약이나 과장도 있었지만, 그는 기자에게 제법 강경한 태도로 이번 사안과 관련해 본인의 견해를 전했다. 이야길 듣는 동안 갈등의 골이 생각보다 깊고, 거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론, 의협이나 그의 견해가 의료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 국민건강을 위하여!?

-왜 국회에 나왔나. 

여야에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법안이 나왔다. 단순히 의사와 한의사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민건강에 위해를 미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나왔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가 국민건강에 어떤 위해를 미치는가.

현대의료기기에서 영상의 진단은 어렵다. 한의사들은 본인들의 부족함을 채우거나 한의학 과학화에 매진해야 함에도,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주장한다. 영상의학 전문의를 딴 의사들도 간혹 실수를 한다. 한의사에게 사용을 허락했다가 오진이 나면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사회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학문으로써 근거 자체가 한의학과 의학은 상이하다. 한의학의 원리에 따른 의료기기들이 이미 있질 않나. 이를 발전시킬 생각을 해야지, 현대의료기기를 넘본다는 것 자체는 또 하나의 ‘적폐’다.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게 적폐인가.

적폐다. 본인들이나 (한의사들이나) 열심히 해야 할 것 아닌가. 예컨대 기간제 교사를 정교사로 전환치 않은 것과 유사하다. (교사는) 교육대학과 임용고시 등 적법한 시스템에 따라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다면, 다시 의대를 입학해서 복수면허를 취득해 활동하면 된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많다. 길은 열려 있는데, 노력 없이 경제적 이유만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따른 건보 재정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의사들에게 현대의료기기를 사용케 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의료기기 사용 비용을 건보 재정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건보 재정이 파탄날 것이다. 정확한 계산 없이 무작정 ‘포퓰리즘’에 의해 현대의료기기를 허용한다면, 건보 재정 파탄으로 인한 미래 세대의 위협이 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금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본인은 국회에 나온 다른 뜻이 있나. 

국회 앞이나 국회 안에서 대관 활동을 해야 한다. 의협 앞에서 천막을 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의협 회원들은 피 같은 회비로 지원하고 있다. 대외협력이사나 의협 임원들이 있어야 할 곳은 국회다. 

-의협 회원 입장에서 추무진 회장의 대응을 어떻게 보는가.  

회원으로서 봤을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

2개의 법안이 나왔을 때, 여러 국회의원실을 찾아다녔다고는 알고 있다. 의협 회원들은 회장에게 일을 잘 하라고 권한을 줬다. (회장이) 의협 대위원회에 비대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 자체가 문제다. 집행부의 일을 대위원회에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른바 ‘직무유기’를 한다고 보는 건가. 

의협 집행부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추 회장 스스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와 관련, 대위원회가 비대위를 만드는 것에 우려한다고 말했었다. 갑자기 이번 사안에선 비대위 발족을 요구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여론은 서늘한데… 

-이번 사안에 대해 국민들은 별로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론 조성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사실 의사들의 노력 부족과 홍보 미흡 탓이기도 하다. 경험상 한의원에서 침을 잘못 맞아 기흉이 생기거나 한약 때문에 간염이 생겨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이 많다. 한방병원조차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전원시킨다. 한약의 성분을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렇듯 한의학 과학화가 시급함에도,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주장하면서) 국민을 위해서라고 부르짖는다.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다 환자의 문제를 발견하면 결국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킬 것이고, 거기서 또 현대의료기기 촬영이 이뤄질 것이다. 

-비용이 이중으로 든다는 것인가. 

그렇다. 비용은 더 들지만, 실효는 없고 건보 재정만 파탄날 것이다. 

-의료소비자들은 의사-한의사간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여론 조성이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닌가. 한 명의 의사로서 이를 어떻게 보나.

과거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전통’에 대한 감정도 있을 것이다. 의사에 비해 한의사가 약자라는 심정적인 공감도 있을 것이다. 

-의료계와 한의계 단체 규모만 비교해도 의료계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약자 프레임’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강자와 약자의 문제가 아닌, 국민건강의 문제다. 한의사들은 한의학 원리에 맞게, 의사들은 의학적 원리에 의거해 환자를 치료하면 된다. 국가재정을 투입해도 (한의학 과학화의) 진행이 더딘 이유는 한의사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과학화에 매진하긴 커녕,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잿밥’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이를테면 현대의료기기 말이다. 

-최근 한의학육성법 개정안이나 이번의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법안 등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가. 

한의학은 증거 중심주의 의학이 아닌 귀납적이다. 과학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한의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종교라고도 본다. 결국 종교와 인문학이 결합된 학문이라는 관점이다. 여기에 언제까지 세금을 투입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실제 한의학의 의료소비자 비율이 높지 않다. 이제라도 건보 재정에 탄력성을 줘서 한의 치료를 이용하지 않는 이들은 건강보험료를 낮춰야 한다. 

-말대로라면 한의사를 찾는 의료소비자의 비율이 낮은데, 현대의료기기 허용이 건보 재정 파탄을 초래한다는 주장은 비약 아닌가.

의료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CT 등 진단기기를 한의사가 쓰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대학병원으로 전원시킬 공산이 크다. 다시 말하면 건보 재정 탄력성을 두어 한의원을 가지 않는 이들의 건강보험료를 낮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분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거듭 말하면, 의료소비자들은 의료계·한의계의 갈등에 상당부분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한의사의 협진을 통한 상호윈윈, 즉 통합진료는 요원하다고 보는가.  

의학적 원리가 다른 만큼 ‘통합진료’라는 말은 ‘빚 좋은 개살구’다. 

-현실성이 없다 이건가. 

환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려면, 한의학에서 과학으로 규명된 부분은 차라리 의학의 영역으로 흡수되도록 유도하는 게 옳다. 양·한방 협진을 보면, 한방 쪽에서 협진을 많이 하려고 하지 현대의학에서 한방에 협진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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