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 소리에 식은땀이 났다

기침 소리에 식은땀이 났다

[현장보고] 국립목포병원에서의 하루②(상)

기사승인 2017-09-16 00:05:00

시작은 호기로웠다. 고백컨대 ‘결핵 따위…’라는 오만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무지는 무모함을 낳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국립목포병원에서 취재를 하며 입었던 옷은 여러 번 세차게 턴 후에 햇볕 아래 하루 동안 널어두었다. 혹여 묻어온 균(菌)을 떨어뜨려는 심산이었다. 세탁기에는 여느 때보다 곱절은 많은 세제를 털어 부었다. 

언제 어디서 떠다닐지 모를 결핵균의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리고도 버스나 지하철, 심지어는 편집국에서도 기침이나 재채기 소리를 들으면 흠칫 놀라곤 했다. 공공장소의 의자나 손잡이 등 여러 사람이 거쳐 간 물건은 되도록 접촉하지 않으려 했다. 이전부터 있었던 다소간의 결벽증도 한층 심해졌다. 마스크를 통째 사다 놓고 외출할 때마다 사용했다. 이렇듯 결핵병원에 다녀온 이후 일상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목포행 열차는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창밖의 풍경은 고즈넉했다. 여행길인 냥 마음도 가벼웠다. 당시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9월 5일 오전. 국립목포병원 의료 실태 취재를 위한 출장. 날씨 흐림. 국내 국립 결핵 의료기관에는 어떤 환자들이 있을까. 결핵 환자와의 인터뷰, 가능할까?’

김천태 병원장이 기자를 맞았다. 명함을 교환한 후 노트북과 카메라, 수첩 따위를  원장실 회의 테이블에 펼치고 앉아있으려니 김 원장은 밥을 먹자고 했다. 벌써 1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를 따라 간 직원 식당에서 한 무리의 대학생들을 만났다. 

김 원장이 물었다. “밥 안 먹고 어디가요?” 까르르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저흰 매점에서 사먹을래요.” 인근의 간호대학교 학생들은 병원에서 실습 중이었다. 한바탕 학생들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지나가자,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채 80명이 안 되는 병원 직원들을 전부 본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이들은 각자의 일터로 뿔뿔이 흩어졌다. 

국립목포병원의 주된 진료는 6층 규모의 병동에서 이뤄진다. 지어진 지 수십 년이지나 건물이 노후화돼 있다. 노후화는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동선 분리를 불가능케 했다. 결핵균이 묻어난 자리를 의료진이 오간다. 결핵균이 의료진이라고 가만 놔두지 않는다. “(나는) 이미 버린 몸이지만 의료진들은….” 김 원장이 멋쩍은 듯 말했다. 실제로 병원 직원들 중 내성 결핵에 감염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급한 데로 개보수 공사를 하고는 있지만, 동선 분리 등의 근본적인 조치는 불가능하다. 회색 시멘트의 속살을 낸 병원 외관은 을씨년스러 보였다.

김 원장을 따라 6층부터 병원 곳곳을 둘러봤다. 환자들의 기침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적막했다. “마스크를 쓰세요.” 결핵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는 기자나 의료진이나 ‘마스크’가 전부였다. 

6층에는 내성결핵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내성 결핵은 한마디로 결핵균이 1차 결핵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것으로 치료기간도 18개월~2년으로 길다. 완치도 어렵다. 그러니까 6층은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의 병동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환자들 중 상당수는 딱한 형편의 사람들이었다. 


규칙적으로 결핵 치료제를 투약하는 것은 어렵다. 까다롭다. 더러 입안에 약을 숨기고 뱉는 환자들도 있다.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퇴원하면 갈 곳이 없는 이들은 병을 유지코자 무모한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 그 때문에 간호사는 제대로 약을 먹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병원을 나가면 딱히 갈 곳이 없는 이들은 막노동을 전전하다 다시 악화돼 재입원하는 일이 많다. 내성결핵도 문제지만, 결핵 외에도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 치매 등을 함께 앓고 있는 환자들은 민간병원의 기피 대상이다. 어디에도 이들이 갈 곳은 없다. 

5층은 중환자실에 해당된다. 결핵 전염 위험성이 있는 환자들이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병동 바닥에 한 환자가 누워있었다.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환자는 종종 이렇듯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했다. 간호사들은 그를 달래가며, 밥과 약을 먹이고 씻긴다. 

부산에서 ‘발견’된 사내는 ‘무명씨’다. 주민등록번호도, 가족도, 연고도 없다. 이름도 모른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국립목포병원에 흘러온 그에게 돌아갈 곳은 없다. 병원에선 인근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에게 남자를 데려가 진료를 받곤 한다고 했다. 국립목포병원의 진료과는 ‘흉부외과’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명을 듣는 동안 초점 없이 멍한 눈의 환자에게 신경이 쓰였다. 이후에도 그의 눈빛은 온종일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도 불리는 5층은, 그러나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간호 인력이 없어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이뤄지려면, 환자 두 명당 간호사 1명이 있어야 한다. 반면, 이곳 ‘보호자 없는 병동’은 48병상이 운영 중이지만, 간호사는 7명에 불과하다. ‘간호 서비스’는 고사하고, 응급 상황을 버텨내기도 힘에 부친다…. 

5층 병동까지 돌아보았을 때,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아마도 당시의 기자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4층에서 오래도록 가슴이 남을 말 한마디를 듣고 만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요”라는. 

*‘기침소리에 식은땀이 났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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